야리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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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지명
고구려시대의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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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구려시대의 지명.
내용

396년(영락 6년)에 광개토대왕이 거느린 고구려군이 백제를 공격하여 공취한 58성(城) 중의 하나이다.

경기도 장단군의 옛이름인 고구려의 장천성현(長淺城縣)에 비정하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영락 6년의 정복지의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임진강 연변 및 한강북쪽 지역에 한정하는 견해와 임진강에서 한강하류와 남한강유역에 걸쳐 있다고 보는 견해, 경기도 및 충청남도 일대로까지 확대하여 그 위치를 비정하는 견해로 나뉘고 있다.

야리성의 위치 비정도 이상의 견해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현재까지는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광개토왕릉비에 따르면 광개토왕 사후 그가 전쟁을 통해 데려온 한인(韓人)과 예인(穢人) 중 220가(家)가 왕릉을 지키는 수묘인연호(守墓人烟戶)로 차출되었다. 이때 야리성의 3가가 수묘인연호의 간연(看烟)으로 차출되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한국고대사연구(韓國古代史硏究)』(이병도, 박영사, 1976)
「영락6년(永樂6年) 광개토왕(廣開土王)의 남정(南征)과 국원성(國原城)」(이도학, 『손보기박사정년퇴임기념한국사논총(孫寶基博士停年退任紀念韓國史論叢)』, 1988)
「한성시대(漢城時代) 백제(百濟)의 지방통치체제(地方統治體制)」(노중국, 『변태섭박사화갑기념한국사논총(邊太燮博士華甲紀念韓國史論叢)』,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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