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17책. 주자본. 1723년(경종 3) 초고 900여 수에서 270수를 다듬어 정리하고, 문 1,400여 편에서 726편을 뽑아 간행하였다. 뒤에 이것을 대본으로 필사하였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권1·2에 시 276수, 권3∼13에 소차 199편, 서계(書啓) 7편, 소 24편, 계 20편, 권14∼21에 응제록(應製錄) 10편, 묘지명 20편, 신도비명 18편, 비(碑) 5편, 묘갈명 37편, 묘표 12편, 권22∼26에 행장 11편, 언행록 1편, 가승(家乘) 58편, 권27∼29에 제문 16편, 서(序) 16편, 제발(題跋) 12편, 기 26편, 잡저 18편, 권30∼34에 서(書) 204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소차와 서계에는 시정(時政)의 득실에서부터 농정(農政)·해방(海防)·공부(貢賦) 등에 관한 건의와 진언이 많다. 그 가운데 「진북변삼사잉진지도소(陳北邊三事仍進地圖疏)」에서는 특히 북방 경비에 관심을 보였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고려의 전성기까지도 우리 국토의 동북면은 국력이 신장되지 못했다는 것을 시작으로, 회령·경성·무산·양영보(梁永堡)·풍산보(豊山堡) 등지의 지명을 열거, 북호(北胡)에 대한 대비책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동사변증(東史辨證)」에서는 단군(檀君)·기자(箕子)·패수(浿水)·진번(眞蕃)·수양산(首陽山) 등에 관해 『삼국유사』·『소씨경세서(邵氏經世書)』·『필원잡기』·『반사(班史)』·『통전(通典)』·『여지승람』 등을 들추어 가면서 전래의 와전된 부분을 비판하였다.
서(書)의 「답상국유상운(答相國柳尙運)」에는 울도(鬱島)의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 대마도(對馬島)와의 관계를 말한 것으로, 울릉도에 대한 일본의 관심이 그 때에도 이미 깊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