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지리유적(襄陽池里遺蹟)은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현남면 지리 산5-7번지 일대에서 확인된 신석기시대 유적이다. 동해안 주변의 낮은 언덕에 있으며, 화상천 하구를 중심으로 형성된 해안사구(海岸沙丘) 지대에 자리한다.
양양지리유적은 1994년 국도 7호선의 4차선 확포장공사 중 유물이 확인됨에 따라 발굴 조사되었고, 1995년 4월부터 1996년 1월까지 강릉대학교박물관에 의해 발굴되었다. 그 결과 상층에서는 철기시대 凸자 형 주거지 7기, 하층에서는 신석기시대 주거지 10기와 야외 화덕자리 2기, 작은 깬돌 유구 1기가 확인되었다.
양양지리유적에서 확인된 주거지의 평면 형태는 어깨선과 바닥의 형태가 모두 원형인 것과 어깨선은 원형, 바닥은 방형인 것으로 구분된다. 어깨선은 원형, 바닥은 방형인 형태의 주거지 비중이 더 높은 편이다. 어깨선의 형태와 서까래로 추정되는 탄화목이 모두 주거지 중앙을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주거지의 전체적인 형태는 상부구조가 원뿔형인 원형 주거지로 추정된다.
주거지의 규모는 30㎡ 이상인 것이 2기이고, 10㎡ 미만인 주거지도 4기 확인되어 전체적으로 소형 주거지가 다수를 차지한다. 주거지 바닥은 점토다짐한 것이 5기이고, 모랫바닥을 그대로 이용한 것이 5기 확인되었다.
내부 시설은 화덕자리, 기둥구멍, 출입구가 확인되었다. 화덕자리는 주거지의 중앙에 원형, 타원형, 장방형의 돌을 돌려서 만든 화덕자리로, 주거지 바닥을 뚫어 돌을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화덕자리는 4호 주거지의 바닥 중앙부에서 확인되었다.
출입구는 1호 주거지에서 주거지 바깥쪽을 향해 돌출되게 설치되었고, 안쪽으로 비탈지게 처리되었다. 야외 화덕자리와 작은 깬돌 유구는 돌을 이용해 주거지 밖에서 불을 사용할 목적으로 설치된 시설로, 크기는 지름 2~3m 내외이다. 식재료의 조리 또는 토기를 굽기 위한 시설로 추정된다.
유물은 주로 어깨선과 바닥 사이의 비탈면에서 출토되었고, 토기류와 석기류로 구분된다. 토기류는 직립구연(直立口緣)의 뾰족바닥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그밖에 항아리모양토기, 바리모양토기, 사발모양토기 등도 확인되었다. 석기류는 돌도끼, 돌살촉, 돌창, 돌칼, 그물추, 갈돌 · 갈판 등이 출토되었다.
양양지리유적의 6호 주거지는 7호 주거지의 윗면에 축조되었고, 선축 주거지인 7호 주거지에서는 중서부 지역 계통의 구분문계 토기, 후축 주거지인 6호 주거지에서는 남해안 지역 계통의 태선침선문계 토기가 출토되었다.
다른 계통의 문양이 시문된 토기류가 중복된 주거지에서 확인됨에 따라 양양지리유적의 시기 구분이 가능하게 되었다. 양양지리유적의 주거지는 구분문계 토기가 출토되는 지리 Ⅰ기와 태선침선문계 토기가 출토되는 지리 Ⅱ기로 구분되었다.
지리 Ⅰ기 토기는 직립구연에 뾰족바닥을 띠고, 문양은 아가리에 주로 단사선문, 아가리 종속문은 종주어골문, 삼각집선문, 변형된 집선문을 배치하고, 몸통에 횡주어골문 또는 종주어골문, 밑바닥에는 방사상의 사선문을 시문하였다. 동일문계, 점열문계 토기도 소량 확인되었다.
지리 Ⅱ기 토기의 문양은 아가리에 남해안 계통의 삼각집선문, 능형집선문, 제형집선문, 사격자문 등이 시문된 것으로, 양양지리유적에서 확인된 것과 같이 구분문계 토기와 태선침선문계 토기가 중복 또는 중첩되어 있는 양상은 양양송전리유적, 강릉초당동유적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지리 Ⅰ기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 결과는 4,590±70(보정연대 B.C. 3,350), 4,600±80(보정연대 B.C. 3,350)이고, 지리 Ⅱ기는 4,420±60(보정연대 B.C. 3,035)로 Ⅰ기 토기 단계가 시간적으로 선행하나 두 시기 간의 시간 차이는 길지 않은 편이다.
향후 조사를 통해 구분문계 토기 단계에서 태선침선문계 토기 단계로의 변화 과정이나 강원도 동해안 지역에 태선침선문계 토기가 전파된 경로에 대한 근거가 확인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