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송전리유적(襄陽松田里遺蹟)은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송전리 일대에서 확인된 신석기시대 유적으로, 동명천 하구를 중심으로 해안을 따라 북서-남동 방향으로 형성된 해안사구(海岸沙丘) 지대의 남쪽 끝부분에 자리한다.
양양송전리유적에서는 두 차례의 발굴 조사를 통하여 신석기시대 유구가 확인되었다.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송전리 23-1번지에 대한 발굴 조사에서 신석기시대 주거지 2기와 야외 화덕자리 3기가 확인되었고, 인접한 송포초등학교 내 옥외 체육관 부지에서 야외 화덕자리 2기가 확인되었다.
1호 주거지의 평면 형태는 둥근 사각 형태이고, 80㎡ 크기의 대형 주거지이다. 바닥은 모랫바닥을 그대로 이용하였고, 화덕자리는 확인되지 않았다.
2호 주거지의 평면 형태는 모서리가 둥글게 다듬어진 사각 형태이고, 면적은 23.5㎡이다. 바닥은 모랫바닥을 그대로 이용하였고, 주거지의 중앙에는 타원형으로 돌을 돌려서 만든 화덕자리가 설치되었다. 화덕자리 주변에서 다량의 탄화된 도토리가 출토되었다.
조리 시설로 추정되는 야외 화덕자리의 평면 형태는 원형 또는 타원형이고, 반타원형의 수혈 굴착면 내에 불의 영향을 받은 작은 깬돌과 흑색 모래가 채워져 있다. 깬돌은 주로 야외 화덕자리의 윗면에서 노출되었고, 크기는 대체로 지름 1m 내외의 소형이다.
유물은 주거지에서 주로 출토되었고, 토기류와 석기류가 확인되었다. 토기의 모양은 발형(鉢形) 또는 심발형토기(深鉢形土器)의 뾰족바닥 또는 둥근바닥 모양의 토기이고, 일부 대형 토기로 추정되는 것도 있다.
토기의 문양 구성은 1호 주거지의 경우 아가리에 단사집선문, 격자문, 삼각집선문, 능형집선문 등 태선침선문계 문양이 시문된 것이 다수 출토되었고, 아가리 종속문은 삼각집선문, 변형된 거치문이 사용되었다. 몸통 문양은 횡주어골문이나 사선문을 시문하거나 문양 없이 정면하였다.
2호 주거지에서는 아가리에 단사선문, 구연부 종속문은 거치문, 변형된 집선문을 배치하고, 몸통에 횡주어골문 또는 종주어골문, 밑바닥에는 방사상의 사선문을 시문한 토기가 출토되었다. 석기류는 돌살촉, 그물추와 같은 수렵 · 어로용 석기와 갈판 · 갈돌 세트 등의 가공구, 돌도끼, 숫돌 등의 공구류가 출토되었다.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안 지역의 신석기시대 시기 구분은 전기의 양양오산리선사유적의 토기류나 융기문토기(隆起文土器)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고, 빗살무늬토기가 확인되는 시기부터 중기에 해당된다.
신석기시대 중기는 다시 구분문계 토기가 출토되는 중기 전반과 태선침선문계 토기가 출토되는 중기 후반으로 나뉘는데, 양양송전리유적의 1호 주거지에서는 태선침선문계 토기가 출토되었고, 2호 주거지에서는 태선침선문계 토기보다 이른 시기의 구분문계 토기가 확인되었다.
주거지에 대한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 결과 1호 주거지 4467±26B.P.(보정연대 33403080B.C), 2호 주거지 4625±28B.P.(보정연대 35203420B.C)로 2호 주거지가 좀 더 이른 시기에 축조되었으나 그 시간 차이는 길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구분문계 토기와 태선침선문계 토기가 길지 않은 시간 차이를 두고 거의 동일 층위에서 확인되는 양상은 양양지리유적이 조사된 이래 이곳뿐만 아니라 강릉 초당동 유적에서도 확인되었다. 다만, 구분문계 토기 단계에서 태선침선문계 토기 단계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양상이나 강원도 동해안 지역에 태선침선문계 토기의 전파 경로에 대한 근거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에 아쉬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