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중화(中和). 자는 이온(而溫), 호는 정세(靖世). 아버지는 생원 양덕유(楊德礻+谷)이다.
1591년(선조 24)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가 대동관 문루에 나왔을 때 생원으로 수성책(守城策)을 건의하여 선조의 칭찬을 받았다.
종숙인 양덕록(楊德祿)과 함께 의병을 규합하고, ‘적개군(敵愾軍)’이라 이름하여 사근교(沙斤橋)에서 왜적의 진로를 막아 강서에 침입하지 못하게 하였다. 1593년의 평양탈환작전에 참가하여 전공을 세웠으며, 1597년 정유재란 때에는 3,000석의 군량미를 조달한 공로로 창릉참봉(昌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에도 의병을 모아 남한산성 싸움에 참가하는 등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역전(易傳)』·『예의회통(禮儀會通)』 등을 저술하였으나 병자호란 때 소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