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시대로부터 신석기시대의 문화성격을 지닌 유적으로 남한강의 강굽이현상에 의해 퇴적된 곳에 있다. 1970년팔당댐 수몰지역조사로 연세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하였다.
구석기문화의 전통을 지닌 유물로는 직접떼기로 떼어낸 두꺼운 격지에 잔손질과 홈파기로 날을 만든 콧날등의 밀개와 찌르개 등이 발견되었다. 고인돌 유구는 남한강을 따라 400m 안에 10여 기가 1㎞ 정도의 거리에 줄지어 있었다. 그 중 ‘ㄷ21호고인돌’이라 이름 붙여진 고인돌을 발굴하였다.
뚜껑돌의 암질은 경운모 편암으로 생김새는 거북모양이다. 이것은 거북신앙의 다산(多産)·장수(長壽)와 연결되는 것으로 여겨지며, 크기는 220㎝×170㎝×30∼50㎝이고 방향은 정남북이었다. 뚜껑돌과 지하유구는 둘레를 자갈로 쌓았고, 바닥에는 돌을 깔지 않았으며, 형태는 일반적으로 남방식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또한 뚜껑돌에는 많은 구멍이 있는데 집중도·크기·수법 등이 엇갈려 있다. 뚜껑돌의 정남북을 축으로 해 나누어보면 구멍은 동쪽과 남쪽에 거의 모여 있다. 유구에서는 손목뼈와 발목뼈가 나왔다. 뼈의 출토상태를 보면, 머리의 방향은 남서쪽의 강 쪽을 향하고 있어 고인돌이 물과 깊은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고인돌 유구의 크기로 보아 묻힌 사람의 키는 150㎝ 정도로 추정된다. 뼈의 밑과 위에서 나온 산화물인 붉은 흙에서는 장례의식에 따른 원시신앙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출토된 유물 중 지킴돌, 즉 둘레돌로 해석되는 길쭉한 자갈이 있었고, 날의 끝부분만을 간 돌도끼 말고는 전부 타제석기이다. 긁개·홈날·나무깎는 연모 등과 신석기문화의 대표적인 석기인 돌도끼와 홈이 팬 타제화살촉과 갈돌대 등이 나왔다.
특히, 흑요석긁개는 흑요석이 지니는 문화적인 성격으로 보아 선사시대 한강유역 주민의 이동·전파·영향·교역 등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출토된 예술품으로는 죽은 사람을 장송(葬送)하는 새〔鳥〕토템과 연결되는 새의 모습과 제의과정의 제물과 연관되는 돼지모양 예술품이 있다.
유물을 중심으로 해 이 고인돌이 만들어진 시기를 추정하면, 돌도끼의 수법으로 보아 갈기를 약간 터득한 시기인 신석기시대 중기에 해당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앙덕리 유적을 중심으로 고인돌문화의 성격을 복원하면, 50여 명의 사람들이 3.5t으로 추정되는 뚜껑돌을 1.5㎞ 떨어진 개군산에서 하루에 운반했을 것이며, 이런 사회는 농산물을 많이 모으는 것을 전제로 한 농경사회이고, 족장사회(chiefdom)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