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이 1904년 5월 19일에 황무지를 개간하고 버려진 제언(堤堰)이나 어장(漁場)을 확장하고 정리해서 어공(御供) 업무를 관할하기 위해 궁내부에 설치되었다. 어공원이 설치된 계기는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와 어업권 침탈에 대응하여 이들 재원을 궁내부가 직접 관리한다는 명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관원으로 경(卿) 1인은 칙임관(勅任官)으로 궁내부 대신이 겸임하고, 서무과장 · 회계과장 각 1인은 주임관(奏任官)으로 궁내부 참서관(叅書官)이 겸임하였다. 어공에 관한 업무이기 때문에 격을 높여 궁내부 대신이 직접 관장한 것이다.
위원 2인은 주임관으로 수시 증감(增減)할 수 있었으며, 주사 3인 판임관(判任官)은 궁내부 주사 중에서 겸임으로 임명하였다. 하지만 곧 어공원 경 이하 과장, 주사까지 전임직으로 관제가 개정되고 실제로 관원이 임명되었다.
그런데 어공원은 설립된 지 3개월도 되기 전인 7월 30일 갑자기 폐지되었다. 이보다 앞서 7월 14일, 중추원 의관 안종덕이 상소를 올려 탁지부와 별도로 궁내부에 내장원이나 어공원 등을 설치하여 많은 재원을 관리하는 것을 비판한 적이 있다. 이 상소만으로 어공원이 바로 폐지되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일본의 궁내부 축소 방침이 폐지의 배경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은 국권 침탈 과정에서 황제권을 압박하기 위해 황실 재정 정리와 궁내부 축소를 강력히 추진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어공원도 폐지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