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기는 높이 3.24m, 지름 1.88m, 두께 23㎝. 북한의 보물급 문화재 제30호. 1346년(충목왕 2)에 주조하여 연복사에 달았던 것으로서 평양종, 강원도 평창의 상원사동종(국보, 1962년 지정), 경주의 성덕대왕신종(국보, 1962년 지정), 천안의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국보, 1993년 지정)과 함께 우리나라 5대명종의 하나이다.
연복사는 고려의 수도 개성에 있던 절 가운데서도 이름난 큰절로서, 옛날에는 개성 남대문 문루 위에서 서남쪽으로 연복사 경내에 서 있는 5층탑이 바라보였다고 한다. 이 연복사가 1563년(명종 18)에 화재로 타 없어지자 종을 남대문으로 옮겼으며, 그 뒤 1900년대 초까지 개성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주기 위하여 울렸다.
연복사 종은 고려에서 주성하였으나 공장(工匠)은 원나라사람으로 고려종과는 형식이 다르다. 동합금으로 주조한 종의 무게는 약 14t에 달한다.
용두(龍頭)에는 쌍룡(雙龍)이 서로 등을 대고 얽혀 종뉴(鐘鈕)를 만들었으며, 종의 중앙 상부에는 사방으로 삼존불(三尊佛)을 부조하고 그 중간 네 곳에 장방형으로 종횡의 곽(郭) 안에 ‘法輪常轉(법륜상전)’, ‘國王千秋(국왕천추)’, ‘佛日增輝(불일증휘)’, ‘皇帝萬歲(황제만세)’라는 4구를 새겼는데, 이 글씨는 저수량(褚遂良)의 서체이다. 그리고 상하 요대(腰帶) 사이에는 범자(梵字)와 티베트 문자를 주출(鑄出)하였고 그 아래 곽내에 종명을 주각하였다.
종구(鐘口)는 8통(八筒)의 파상으로 둘레에는 파상문이 있으며 그 사이에 8괘(八卦)를 주출하여 진귀한 의장을 보이고 있다. 종을 주조하게 된 인연은 원(元) 지정(至正) 6년(1346) 봄 강금강(姜金剛)과 신예(辛裔)의 정부양사(正副兩使)가 명을 받들어 금폐(金幣)로써 종을 금강산에서 주성하였다.
명문은 당대의 명신 이곡(李穀)이 지었으며, 성사달(成師達)이 썼다. 글씨는 자경 2㎝ 정도의 해서이다. 명문 말미의 병술(丙戌)이라는 간지는 고려 충목왕 2년(1346)으로 종의 주조연대를 밝혀주고 있다.
연복사종은 형태가 우아하고 조각들이 섬세할 뿐 아니라 소리 또한 아름답고 맑아 그 여운이 100리 밖까지 퍼졌다고 하며, 종의 명문은 고려시대 금석문 자료로서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