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왕의 경략지 중의 하나이다.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에 의하면 395년(永樂 5년)에 거란(契丹)족의 일부인 필혈부(匹絜部)에 비정되는 패려(稗麗)를 정벌하기 위하여 부산(富山)·부산(負山)을 지나 염수에 이르렀는데, 여기서 패려의 부락(部落) 3개와 600∼700영(營)을 공파하고 수많은 소·말·양 등을 뇌획하고 귀환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광개토대왕 즉위년인 392년에 북진(北進)하여 거란을 토벌하고 남녀 500구(口)를 포로로 잡았으며, 고구려에서 빼앗긴 백성 1만명을 다시 초유하여 돌아왔다는 기사가 있는데, 앞서 비문의 영락 5년 기사와 동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염수의 위치에 대해서는 소요수(小遼水) 즉 혼하(渾河)로 비정하는 설, 태자하(太子河) 상류로 보는 설, 요하 상류 시라무렌하 유역의 염호(鹽湖)인 광제호(廣濟湖) 일대로 보는 설 등이 있다.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으나, 요하 상류 일대로 보는 견해가 가장 합리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