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2기. 동쪽 귀부 1.22m, 서쪽 귀부 1.06m. 영암사지(靈巖寺址)는 신라시대의 유적으로, 법당지(法堂地)를 비롯한 건물의 기단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당시 사찰의 광대함을 알 수 있다. 절터 안에는 영암사지 쌍사자석등(靈巖寺址雙獅子石燈)과 영암사지 삼층석탑 등 통일신라 전성기의 석조 유물들이 남아 있다.
귀부는 법당지의 동서쪽에 각각 위치하고 있는데, 2기의 귀부 모두 탑신석(塔身石)과 이수(螭首)가 소실되었다. 동쪽 귀부가 서쪽 귀부보다 규모가 크지만, 똑바로 뻗은 목과 용 모습같은 귀두(龜頭), 입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점 등은 공통적 특징이다.
동쪽 귀부의 등갑[背甲]에는 전체에 6각으로 된 복선갑문(複線甲文)을 조식하였고, 등 중앙에 마련한 비좌(碑座)의 주변에는 아주 정밀하게 사실화된 인동운권문(忍冬雲卷文)을 조각하였다. 서쪽 귀부는 동쪽 귀부보다 조각의 깊이가 얕으며, 등갑에는 역시 복선갑문과 인동문을 조각하였다. 등 중앙에 마련한 비좌의 4면에는 안상(眼象)과 연판(蓮瓣)을 조각하였으며, 동쪽 귀부에 비하여 순박한 조형기법을 보이고 있다.
이 절터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전하는 바가 없는데, 다만 강원도 양양에 있는 선림원지(禪林院址) 홍각선사비(弘覺禪師碑) 조각에 새겨진 글자에 ‘海印寺□□□求其勝者恭聞…年復於靈巖寺修定累月(해인사□□□구기승자공문…연복어영암사수정누월)’이라 한 것이 유일한 관련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