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영전사지 보제존자탑 ( )

원주 영전사지 보제존자탑
원주 영전사지 보제존자탑
건축
유적
국가유산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영전사터에 있었던 고려후기 승려 보제존자의 사리를 봉안한 2기의 사리탑, 승탑, 부도, 묘탑.
이칭
이칭
영전사지 보제존자사리탑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원주 영전사지 보제존자탑(原州 令傳寺址 普濟尊者塔)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탑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1963년 01월 21일 지정)
소재지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용산동6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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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영전사터에 있었던 고려후기 승려 보제존자의 사리를 봉안한 2기의 사리탑, 승탑, 부도, 묘탑.
개설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915년 원 위치에서 반출되어 경복궁으로 옮겨졌다. 당시 두 탑 모두에서 사리장엄구가 출토되었다. 일제강점기 고유섭의 기록에 의하면 두 탑 중 하나는 조금 크고 상륜부에 연화가 새겨진 편평한 복발, 보병, 상륜 2개가 있었고 다른 하나는 방형 노반 위에 보륜, 보주 등이 있었다고 하며 그 중 보병이 없는 탑에서 탑지석이 나왔다고 전한다. 명문에 탑지석이 있는 탑을 본탑, 다른 탑을 동탑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크기와 형태로 볼 때 탑지석은 보병이 있는 탑에서 출토된 사리구와 일치하여, 현재 보병이 있는 큰 탑을 서탑, 보주가 있는 탑을 동탑으로 전시되어 있다. 원 위치에서 이동되면서 출토된 두 탑의 사리장엄구가 와전되어 전해지면서 발생했던 착오로 보인다. 1990년에 국립중앙박물관(현 국립고궁박물관) 정원으로 이전되었으며 현재는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있다.

역사적 변천

이 탑들이 있었던 영전사지는 관련 기록이 전혀 전해지지 않으며, 1912년에 이 탑들을 조사하였던 세키노 다다시[關野貞]는 “폐영전사지”로 기록하고 있어 당시에도 유래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황폐화된 절터였던 것 같다.

다만, 출토된 현 동탑 사리장엄구에 시주자 ‘원룡(元龍)’의 이름이, 현 서탑 유물에서는 ‘시주 원로(元老)’, ‘시주 원씨(元氏)’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납석제 지석 앞뒤 면에는 도인(道人) 각수(覺修)가 왕사 보제존자의 사리 1과를 주탑(主塔)에, 비구니 묘관(妙寬)은 보제존자 사리 1과를 동탑에 봉안한다는 내용과 함께 공덕주들, 석수와 노야(爐冶) 등의 장인들의 이름과 홍무 21년(1388) 무진 4월에 목사(牧使) 강은(姜隱)이 이를 기록하였음이 새겨져 있다. 따라서 1388년에 동, 서 쌍탑의 불탑 형태로 조성되어 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내용

고려시대 전형 양식의 석탑 모습으로 조성된 고려시대 후기 승탑으로, 현 서탑의 기단과 탑신부가 동탑보다 약간 크며 옥개석이 조금 얇다는 것과 상륜부 형태가 다르다는 점 이외에는 거의 동일한 모습이다.

기단부는 2층 기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하층 기단의 크기가 작다. 하층기단 하대와 중대석은 한 돌로 하단에 하대가 모각되어 있으며 4매의 부재로 결구되었다. 하층 기단 갑석은 서탑은 4매, 동탑은 2매로 구성되었으며 하단은 수평처리 되었으며, 상단에는 경사가 있으며 중앙에 호, 각의 괴임을 두어 상층 기단 면석을 받치고 있다.

상층 기단 면석은 4매로 엇물려 구성되었으며 갑석은 하단에 부연을 두고 경사를 약간 둔 상면 중앙에는 각, 호, 각의 괴임을 두어 위로 별석 받침을 두었다. 탑신을 받는 별석받침은 상, 하단에 각, 호, 각의 괴임을 가지고 있다. 기단부 상, 하층 면석에는 우주가 모각되거나 옆 면석의 측면이 대신하고 있으며 탱주가 각 1주씩 조식되어 있다.

탑신과 옥개석은 모두 각 1매로 조성되었으며 탑신은 초층에 비해 2층의 높이가 급격히 감축되었다. 그러나 폭과 전체적인 체감은 안정적이다. 탑신에는 양 우주가 모각되었으며 옥개석 층급은 4단이다.

상륜부는 동, 서 승탑이 차이를 보이는데 서탑은 연화문이 조식된 편평한 복발형의 부재 위에 보병이 남아 있고 동탑은 상단에 얕은 2단의 테두리를 두른 노반 위에 보륜과 보주가 중첩되어 있다.

특징

부처님처럼 분사리되어 다른 여러 곳에서도 보제존자나옹의 사리를 봉안한 탑들이 조성되었다. 그 중 이 동, 서탑은 두 명의 시주자에 의해 동, 서 쌍탑의 불탑형으로 조성되어 특이하다. 또한 고유섭의 기록에 의하면, 서탑의 상륜부가 복발과 보병 위에 현재는 없어진 보륜 2개가 얹혀 있었다고 하여 라마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동탑의 모습도 라마탑을 한국적으로 표현한 양주 회암사지 부도탑의 모습과 유사하여 주목된다.

의의와 평가

고려 12세기 법상종에서 방형의 특수형 승탑이 조성되고 있기는 하지만, 보제존자의 탑은 분사리에 의해 다수가 조성되었음이 확인되고 그 형태도 구형탑신, 석종형 탑과 함께 심지어 불탑형 쌍탑이 남아 있어 당시 승려들에 대한 숭배의 정도를 짐작하게 해 준다. 이러한 현상은 여말선초에 집중되는데 특히 나옹의 스승인 지공선사와 나옹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온전하게 남아 있지는 않지만, 동, 서탑의 상륜부에는 여말선초에 영향을 미쳤던 라마탑의 영향을 감지할 수 있어 시대성을 보여준다.

참고문헌

『조선탑파의 연구』하(고유섭, 열화당, 2010)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문화재 이전』(국립중앙박물관․동안종합건설, 2005)
『신라와 고려시대 석조부도』(엄기표, 학연문화사, 2003)
『신라하대와 고려시대 승탑 연구』(소재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2)
「高麗-朝鮮時代 分舍利 浮屠의 建立 記錄과 樣相 그리고 造成 背景」(엄기표, 『불교미술사학』 제20집, 불교미술사학회, 2015)
「양주 회암사지 부도탑」(강병희,『회암사지 부도탑』회암사지박물관 연구총서1, 회암사지박물관, 2013)
집필자
강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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