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통사 주지 지칭 묘지 ( )

목차
서예
유적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고려시대 승려 지칭(1113-1192)의 묘지석. 묘지(墓誌).
목차
정의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고려시대 승려 지칭(1113-1192)의 묘지석. 묘지(墓誌).
내용

1193년(명종 23) 건립. 지석의 크기 가로 59.5cm, 세로 37cm. 글씨는 자경 1㎝가 좀 넘는 해서이다. 1934년 경기도 개성에서 출토되었다.

지칭의 자는 치원(致原), 남원(南原)사람으로 속성은 윤씨(尹氏)이다. 어려서부터 불교를 좋아하였고, 중이 되어서는 홍원사(洪圓寺) 주지 교웅(敎雄)을 사사하였다.

1138년 27세의 나이로 종선(宗選)에 뽑히고, 1170년에 삼중(三重)이 되었으며, 1175년 명종으로부터 만수가사(滿繡袈裟)를 받고, 1179년에는 수좌(首座)가 되었다. 이어 1187년에는 승통(僧統), 1189년에는 영중선(領中選)이 되었다.

이듬해 나라에서 백좌회(百座會)를 열자 그를 영수로 삼았고, 1191년에는 내전(內殿)의 대장도량(大藏道場)에서 우두머리가 되었으며, 이듬해 4월 다시 종선을 맡아보다가 그만두고 삼각산(三角山)의 원각사(圓覺寺)로 내려와 머물다 12월 80세로 생을 마쳤다. 1193년 진봉산(進奉山) 남쪽 기슭으로 이장하매 제자들이 그의 덕을 기리고자 묘지에 기록하였다.

참고문헌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상(上)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