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은 1인이다. 1456년(세조 2) 6월 사육신사건 직후 집현전을 혁파하고 예문관이 그 사무를 대행하다가, 1464년 11월에 양성지(梁誠之)의 건의에 의하여 집현전 대신 홍문관을 설치하였지만 처음에는 이름만 존재하였다.
1478년(성종 9) 3월에 홍문관이 예문관에서 완전히 분리 독립될 때 정1품의 영홍문관사 1원을 두어 의정(議政)이 겸하게 한 것 같다.
그것은 예문관이 국초에 예문춘추관으로 있을 때 감관사(監館事) 1원이 있어 시중 이상이 겸하였다 하고, 1401년(태종 1) 7월에 예문춘추관이 예문관과 춘추관으로 각각 분리될 때 실록에는 아무 언급이 없지만, 1466년 정월에 관제를 개혁할 때에 영관사를 영사로 고쳤다고 한 것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성종 때 예문관에서 홍문관이 완전히 분리 독립할 때에도 홍문관에 영사가 설치되어『경국대전』에 그대로 수록되었을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