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대구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674년(현종 15)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곽재우(郭再祐)와 곽준(郭䞭)의 덕행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77년(숙종 3)에 ‘예연(禮淵)’이라고 사액되어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그 뒤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훼철되었으나, 1982년 문화재관리국(현, 국가유산청)의 후원과 지방유림의 성금으로 복원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묘우(廟宇), 신문(神門), 4칸의 강당, 각 3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고사(雇舍), 삼문(三門) 등이 있다.
사우에는 곽재우와 곽준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된 강당은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강론 장소로 사용된다. 고사는 향례(享禮) 때 제수를 마련하여 두는 곳이며, 동재 · 서재는 유생들이 기거하면서 수학하는 곳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3월 하정[下丁: 세번째 정일(丁日)]과 9월 하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은 4변(籩) 4두(豆)이다. 유물로는 문집 약간권이 보관되어 있고, 재산으로는 밭 1,600평과 대지 500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