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신경(信卿). 아버지는 군수 오수일(吳遂一)이다. 일찍이 사마시에 합격하고, 1711년(숙종 37)에 음보로 정릉참봉(貞陵參奉)이 되었다. 의금부도사·활인서별제(活人署別提)·장례원사의(掌隷院司儀)를 거쳐 봉화현감으로 부임하였는데, 양전(量田: 토지측량에 의한 조사)을 잘하여 조정으로부터 포상을 받았다.
그 뒤 세자익위사 익찬(翊贊), 대구통판(大丘通判), 사옹원주부를 거쳐 다시 의금부도사가 되었고, 1731년(영조 7)에 합천군수로 나가 동요된 민심을 안정시키고 농사를 장려하여 송덕비가 세워졌다.
이듬해 선산부사·영희전령(永禧殿令)이 되고, 1735년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승지·동래부사를 거쳐 경상도관찰사, 병조·예조의 참의, 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