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영숙(寧叔), 호는 귀와(歸窩). 유정(兪淨)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여해(兪汝諧)이다. 아버지는 참판 유창(兪瑒)이며, 어머니는 예조참의 이척연(李惕然)의 딸이다. 박세채(朴世采)의 문인이다.
1675년(숙종 1) 생원이 되고, 1677년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682년에는 지평이 되었다. 이듬해 서인의 과격파인 김익훈(金益勳)이 남인을 완전제거하려고 모반설을 조작하자, 같은 서인의 소장파로 그 간계를 폭로하고 처벌을 주장하다가 진도군수로 좌천, 이어 파직되었다.
1686년 부수찬으로 기용되고, 정언·교리·검상·승지를 역임하고, 1695년 대사간이 되었다. 이듬해 강원도관찰사가 되고, 전라도·함경도의 관찰사를 역임한 뒤 대사성·대사헌·이조참판을 지냈다. 1704년(숙종 30) 형조판서에 이어 병조판서에 전직, 이정청당상(釐整廳堂上)을 겸임하여 군정(軍政)의 쇄신에 힘썼다.
1706년 동지사(冬至使)로 청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귀국하였다. 형조판서가 되었으나 1710년 아내를 죽인 이만운(李萬運)의 송사처리가 지연되고 있다는 죄인의 처남 심일녕(沈一寧)의 격고(擊鼓)로 파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