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평정하는 데에 공을 세운 오명항(吳命恒)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으로, 경기도 안성시 낙원동에 위치한다. 1978년 11월 10일에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안성시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오명항(1673~1728)은 영의정 오윤겸(吳允謙)의 현손으로 윤증(尹拯)을 옹호한 소론계의 중진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영조가 즉위한 뒤 호조판서가 되어 압록강 지역의 유민을 안정시켰고, 1728년(영조 4) 병조판서 재직 시절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났을 때, 서울로 진격해오던 반란군을 안음(安陰)과 죽산(竹山)에서 진압하였다. 이때의 공로가 인정되어 분무공신(奮武功臣) 1등으로 해은부원군(海恩府院君)에 봉해졌다. 이후 우의정을 역임하였다가 치사(致仕)하였다.
비석은 원래 경기도 안성읍 동본동(東本洞)에 있었으나, 1969년 현재의 위치인 안성 공원 안으로 이전, 복원하였다. 비의 규모는 총 높이 309㎝, 높이 214㎝, 너비 93㎝, 두께 29㎝으로 된 화강암 비석이다.
오명항이 죽은 뒤 16년이 지난 1744년(영조 20)에 안성의 군관민이 세웠다. 앞면은 이인좌의 난 토벌 당시 그의 종사관이었던 우의정 조현명(趙顯明)과 병조판서 박문수(朴文秀)가 글을 짓고 글씨를 썼으며, 전액(篆額)은 대제학 이광덕(李匡德)이 썼다. 전액에는 ‘조선국사로도순무사오공안성토적송덕공비(朝鮮國四路都巡撫使吳公安城討賊頌德功碑)’라 되어 있다.
뒷면에는 이인좌의 난 때 토벌을 위하여 동원된 장령(將領)과 사졸(士卒)들의 명단이 새겨져 있는데 병조판서 김시형(金始烱)의 글씨다. 우측면에는 군수 민제장(閔濟章)을 비롯하여 공을 세운 안성 관원의 명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