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0년(광해군 12)에 건립되었다. 임진왜란을 당하여 첨지중추부사 전몽룡(全夢龍)의 명에 따라 아들 오형제가 의병을 규합하여 결사적 맹세를 다짐하고 떠났던 곳으로서, 창의대(倡義臺)라고 불러왔다.
1620년 창의대에서 전씨 문회를 개최하였을 때 패인관(佩印官) 다섯 명이 참석하여 대추나무 가지에 각각 인(印)을 걸었다. 그 뒤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이 나무를 깎아 ‘五印亭’이라 새겼고, 1855년(철종 6) 다시 정자 3칸을 건립하였다가 1916년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