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개성(開城). 현종의 14대손으로 일찍이 순녕군에 봉하여졌다.
1391년(공양왕 3)에 사예(司藝) 유백순(柳伯淳)과 더불어 위화도회군을 비방하였다고 하여 대성(臺省)과 형조의 관원들에 의하여 자은사(慈恩寺)에서 국문당하였다.
처음에는 불복하였으나 고문을 당한 뒤에 자백을 하였다. 그러나 종실이라 하여 이듬해 견주(見州: 지금의 경기도 양주)에 유배되었다가 다시 먼곳으로 유배되었다.
순녕군이 현종의 14대손이면서도 종실의 자격을 가지는 것은 왕실과의 중첩된 혼인관계를 통하여 대수와 상관 없이 종실로서 존속되었기 때문이다.
즉, 대수(代數)가 멀리 내려가도 공주와의 혼인관계를 통하여 부마(駙馬)가 되고, 다시 그 사이에서 태어나는 소생은 국왕의 외손으로 되어 혈연관계가 가까워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