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개성(開城). 아버지는 평양공(平陽公) 왕현(王昡)이다. 현종의 11대손이다.
1310년(충선왕 2)에 순정군(順正君)으로 봉해진 뒤 다시 순정대군으로 봉해졌다. 여동생인 백안홀독(伯顔忽篤)이 원나라 인종(仁宗)의 사랑을 받은 것을 계기로 원나라의 한림학사에 제수되었다.
1311년에 어향(御香)을 받들고 환국하였는데, 고사에 어향을 맞이하는 데에는 예복을 입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왕숙이 사람을 보내어 이를 강제하였으므로 백관이 예복을 입고 맞이하였다. 1316년(충숙왕 3)에는 해주의 전답 5,000여 결을 탈취하여 이 지역 사람들이 공납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어 유망민이 생길 정도로 수탈이 심하였다.
이에 조정에서 명하여 왕숙의 가노로 해주에서 백성을 괴롭히는 자를 잡아 먼 섬에 유배하였다. 또한, 일찍이 제(制: 임금의 명령)를 고쳐 역마(驛馬)를 함부로 하였고, 또 요양(遼陽)·망해(望海)등지에서 200여 호를 비합법적으로 차지하였으며, 원나라 궁정의 세력을 믿고 많은 불법을 저질렀다.
또한, 임금을 알현하는 데에도 거만하여 예의가 없었으므로 1319년 원나라의 단사관(斷事官) 중란합리합적(中欒哈里哈赤)과 영사(令史) 구우직(丘友直) 등에 의하여 잡혀왔고, 충숙왕이 원나라 사신과 함께 행성(行省: 征東行省)에서 국문하였다.
종실로서 원나라세력에 붙어 본국을 괴롭힌 표본적 존재였으며, 후일 기철(奇轍) 같은 권신이 등장하는 데 일정한 구실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