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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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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흠집내고 욕보이는 말을 가리키는 국문학용어.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욕은 남을 흠집내고 욕보이는 말을 가리키는 국문학용어이다. 비속어 및 남녀의 성기나 성행위를 지칭하는 따위, 개와 같은 짐승을 가리키는 따위, 쌍스러운 표현이나 사나운 표현으로 남을 흠집내고 욕보이는 말이다. 욕은 호칭의 욕, 묘사의 욕, 비난의 욕, 의지의 욕 등으로 범주화될 수 있다. 욕 말의 기능은 문맥 및 맥락에 고도로 의지하는 가변성을 갖고 있다. 욕은 애칭이자 감탄사와 자기비하로 쓰이고, 또 농에서 악담과 저주, 그리고 경구며 질책으로까지 기능하고 있다. 이처럼 욕에는 사교성과 배타성, 웃음과 폭력, 응징과 훈계가 중첩되어 있는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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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남을 흠집내고 욕보이는 말을 가리키는 국문학용어.
내용

‘욕설(辱說)’이라고도 한다. 욕은 크게 보아서 대가리(머리) · 주둥이(입) 등의 비속어 및 남녀의 성기며 성행위를 지칭하는 따위, 또는 개와 같은 짐승을 가리키는 따위, 쌍스런 표현이나 ‘뒤져라’, ‘꺼꾸러져라’ 따위 사나운 표현으로 남을 흠집내고 욕보이는 말이다. 그러나 같은 욕이라도 애칭(愛稱)으로 쓰이거나 농으로 쓰이는 것이 있음을 고려한다면, 욕에는 공격성이나 가학성(加虐性)을 앞세운 비사교적인 부류가 있는 반면, 역으로 사교성에 이바지하는 부류도 포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보통 욕이라고 하면 후자를 주로 가리키게 마련이다. 경상도 지역의 “아이구, 이 문둥아!” 또는 호남 지역의 “이, 잡것”, 그리고 서울지역의 “이 새끼” 등은 욕말이 다정함을 과시하는 것으로 전용(轉用)된 “애칭욕”의 보기들이다. 그런가 하면 “똥물에 빨아서 오줌에 튀길 놈”은 말을 주고받는 사람이 친구끼리고 자리가 술판쯤 된다면 농으로 통하고 웃음을 유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농욕’으로 범주화될 만하다.

애칭욕은 인간관계며 말투에 전적으로 의존하지만, 농욕은 이들 조건이 익살 내지 기지(機智)와 상승하여 효능을 발휘하게 된다. 이 경우 기지 내지 익살은 결과적으로 과장법 · 역설법 · 비유법 등의 수사법을 구현하게 된다. 불의(不意)의 당돌함, 기상천외의 즉흥성이 듣는 이를 웃기면서 욕말이 농이 되는 것이다. 민요의 일부, 탈춤, 판소리 등에 매우 흔하게 또는 효과적으로 활용되는 농욕은 상대가 바뀌고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지 듣는 이를 해코지하게 된다. 그래서 능욕은 검정빛 해학(black humour)을 함축하면서 풍자가 되고 야유가 되는 것이다. 김삿갓이 그의 시에 담은 욕은 대체로 이 종류에 속한다.

욕이 남을 흠집내고 욕보이는 양상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욕하는 사람이 욕하는 자기자신을 욕되게 하는 것까지 고려한다면 욕의 흠집내기 양상은 더욱더 복잡해진다. “아이고, 이년의 팔자 개같이 타고나서!”는 혼잣말로도 사용되거니와 욕은 이처럼 신세타령 내지 팔자한탄이 수반된 자기비하로도 쓰인다. 여성들이 노래한 민요에서는 이같은 자조(自嘲)의 욕이 주제의 일부만이 아니고 문체며 정서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나 흠집내기 욕은 역시 남을 객체로 삼을 때 그 본성이 십분 발휘된다. 객체에 대한 흠집내기 양상 또한 결코 단순하지 않다. 가볍게는 비아냥거림이며 놀려먹기, 그리고 업신여김이 있는가 하면 무겁게는 인신공격과 저주가 있기 때문이다. 같은 흠집내기의 욕이라도 쓰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관계 및 상황에 따라 꾸짖음 내지는 채찍질의 욕으로 전용될 수도 있다. 질책하고 질타하는 욕은 대체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사용하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신분이나 나이 면에서 처지가 낮거나 못한 사람이 악을 쓰면서 대거리하는 욕은 악다구니의 욕으로 범주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상당한 정도, 반항심의 표현이거나 아니면 억눌린 자 또는 당하는 자의 항변이라고도 보아진다. 탈춤에서 말뚝이나 취바리가 내뱉는 욕은 대체로 이에 속한다. 이같이 대척(對蹠)적인 면까지 포함하면 욕의 기능 내지 쓰임새는 매우 다양하다.

농과 저주는 서로 조정될 수 없을 만큼 다르고, 애칭과 인신공격은 서로 절충될 수 없다. 또한 자기비하와 타인에 대한 가학(加虐)이 한 묶음이 될 수도 없다. 그런가 하면 “제기랄!”, “우라질!”, “빌어먹을”, “젠장” 등은 무심코 내뱉는 감탄사로 전용된 욕이다. 이 때 그 본래의 뜻 내지 어원(語源)의 뜻은 삭아져 없어지고 “아!”나 “오!” 따위 순수한 허사(虛辭)인 감탄사와 거의 비슷해서 위에서 들어보인 어떤 범주에도 속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 여러 범주에 들 욕이 개별적으로 별도의 혹은 독자적인 표현이나 형식을 취하지는 않고 있다. 같은 욕말이 화자의 처지,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의사소통)의 상황, 그리고 주변여건 등에 따라서 수시로 다른 범주의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욕말의 기능은 문맥 및 맥락에 고도로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욕의 형식을 말할 때나 그 의미며 기능에 대해서 말할 때 이 가변성은 크게 유념해야 한다.

욕은 그 쓰임새만 다양한 것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의 현장에서도 번다하게 쓰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서로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서로 멀면 먼 대로 욕은 대화나 독백 속에 껴든다. 그런 만큼 욕은 당연히 ‘민속화법’ 내지 ‘민간담론’의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가령, 싸움판에서라면 말의 주고받음이 거의 전적으로 욕으로만 엮어지는 것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또 사람에 따라서는 일상회화에조차 꼭 욕을 개입시키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욕이 애칭이며 감탄사와 자기비하, 또한 농에서 악담과 저주, 그리고 경구(警句)며 질책으로까지 기능하고 있다는 것은 일상언어로서 욕이 갖는 유례 드문 다층성(多層性)에 대한 증언이 될 수 있다.

욕에는 화자(話者)의 자기 지시적인 발화(發話)와 타자 지시적인 발화가 중첩되어 있고, 사교성과 배타성이 중첩되어 있다. 또한, 웃음과 폭력 그리고 응징과 훈계가 중첩되어 있다. 적어도 네 가닥으로 역과 역이 맞물리면서 욕은 매우 복잡하게 다층으로 얽힌 언어사용이 된다. 이것은 적어도 한 범주의 언어로서는 갖추기 어려운 다층성이라고 지적될 만한 것이어서 언어로서 욕이 갖추고 있는 남다른 개성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이것으로 욕이 쌍소리, 아가리질이라고 굳이 훼폄(毁貶 : 헐뜯고 깎아 말함.)되기만 할 언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거니와 달리는 욕은 쓰기 나름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방적으로 흉측한 소리, 더러운 소리 또는 추잡하거나 사나운 소리라고만 단정지을 수는 없다.

욕의 언어적 기능의 다양성은 사용하는 현장 내지 맥락의 다양성과 대응하고 있다. 독백이 그 맥락인가 하면 대화가 맥락일 수도 있다. 허물없는 농판(농찌거리판)에서 흥을 돋우는가 하면, 준엄하게 벌내리는 꾸중판에서 서릿기운을 돋울 수도 있다. 이와는 달리 아수라장 같은 싸움판에서 독을 뿜는가 하면, 장거리의 흥정판에서 저울대 구실을 할 수도 있다. 이 같은 맥락 속에서 욕은 흔히 욕쟁이라고 일컬어지는 화자의 마음의 앙금이나 감정의 응어리를 풀고 분을 삭이면서 억제된 공격충동을 대상(代償)해서 충족시키는 구실을 다한다. 흔히 “속 시원하게 (욕)한판 했다.”고 할 때 바로 이같은 욕의 대상기능이 지적된다. 심지어 마음에 상처받은 자의 자기치유 행위라는 면도 욕의 기능에 함축될 만한 것이다. 이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 욕이 피해의식과 직결되고 상처받은 자의 심성과 연관된 언어활동임에 대해 시사하는 것이다.

이 점이 강조된다면 욕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가하는 역공의 언어라는 면목이 잡혀질 것이다. 그 가해가 부당하고 부정하고 왜곡된 것일 때 욕의 역공성은 더한층 증폭될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다시금 부분적으로나마, 욕이 윤리감이나 정의로움을 소극적으로나 우원(迂遠)하게 표출하는 언어활동임을 포착하게 된다. “억울해서, 화가 나서, 분이 치밀어서 욕을 한다.”는 표현은 실제로 많이 쓰이고 있다. 가령, 김삿갓의 수다한 욕시(辱詩)와 탈춤판의 말뚝이며 취바리의 욕설을 보기로 든다면 이 점은 쉽게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상처받고 시달린 대표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의 상습적인 욕쟁이의 입에 붙은 욕을 통틀어서 피해의식의 발산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욕은 정반대로 부당하거나 도가 지나친 언어적 가학행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욕에 “뒤저라”느니 “망해버려라”느니 또는 “염병을 앓아라”느니 하는 사설이 껴드는 것은 욕의 가학성을 극대화하게 된다.

굳이 피해나 상처의 대상(代償) 내지 보상이라기보다 당연히라고 해도 좋을 만큼, 남녀의 성 · 성기 그리고 성행위에 달라붙게 되다. 이것은 욕이 쌍소리를 겸할 때 리비도(libido : 프로이트가 규정한, 모든 행위의 숨은 동기를 이루는 근원적인 잠재의식하의 욕망. 곧 성욕 및 경쟁에너지의 본체)의 무게만큼 폭발하고 리비도의 깊이만큼 솟구치는 것이라는 명제를 이끌어내게 유도한다. 쌍욕은 억압된 리비도의 반작용인 셈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 욕은 적어도 그 문장의 표층의 의미를 기준 삼을 때, 역설이 될 수도 있다. 가령, “× 빨아라!”, “○ 먹어라”, “×대가리 같은 놈”, “○ 구멍 같은 년” 등은 남녀성기를 극단적으로 비하하면서 발화자의 리비도의 발산을 촉진시키기 때문이다. 성을 천대하고 몰아붙이는 역작용으로 억압된 성충동이 터뜨려지거나 달래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예컨대 “×을 빼놓을라!”, “○에 말뚝을 박을라!” 등의 욕들은 이를테면 언어적 성폭행으로 리비도의 발산을 기도한다는 점에서 “○ 먹어라”와 같은 욕과는 성격이 다르다. 후자는 이를테면 언어적 성희롱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가지의 보기는 리비도가 타인의 성에 대한 공격충동으로 발산된다는 공통성을 갖고 있다. 욕에서 성이 더러운 것으로 의식되어 있다는 점에서 똥 · 오줌 · 침 등은 성과 한 묶음이 될 수 있다. “똥이나 먹어라!”, “오줌에 저릴라!”, “침을 뱉을 놈” 등이 이에 속하거니와 이 때 항문(肛門) 성욕을 고려한다면, 배설의 쾌감과 욕하는 행위의 쾌감 사이에 통로가 열려 있음을 지적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 뜻에서 욕은 언어에 의한 배설행위요 배변(排便)행위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욕은 성이나 똥오줌에 달라붙기 잘하지만, 불륜이나 패륜에도 곧잘 달라붙는다. 그것은 욕이 성을 똥오줌 다루듯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륜이나 패륜 등의 악덕 또한 똥오줌 보듯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뜻에서 성과 똥오줌과 불륜 및 패륜은 욕의 세계에서는 한통속이다. 간음, 근친상간, 근친학대나 불경(不敬) 등은 욕이 즐겨 달라붙는 대상들이다. 이와 동시에 욕은 또 다른 악덕, 예컨대 오만, 위선, 잘난척함, 업신여김 등도 더러운 것으로 의식하고 있다. 욕은 이들 악덕이 인성의 똥오줌임을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또 욕에서는 인색한 사람, 비정한 인간, 호색하는 사내, 얌치 없는 사람 등이 똥오줌과 한통속이 된다.

유감스럽게도 저능이나 불구 그리고 질병을 욕감태기로 삼고 있음을 논외로 한다면, 욕은 악덕에 대한 사나운 비판이요 공격이라는 긍정할 만한 속성을 드러낸다. 악덕을 욕가마리로 삼는 욕말 자체가 사납고 더럽다는 것을 고려할 때, 욕은 이열치열에 견줄 만한 이악치악(以惡治惡)의 언어 내지 이독치독(以毒治毒)의 언어라고 규정될 만하다. 그것은 욕이 ‘민중의 규탄’일 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욕은 그 기능의 다양성 내지 쓰임새의 다극성(多極性)에 대응될 수사의 다양성을 갖추고 있는 언어적 진술이다. 천속하고 거칠고 사나운 낱말이나 어구를 활용하는 욕은 대체로 단일문장이다. 자주 쓰이는 강압적인 명령법은 화자의 소망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거니와 지적의 진술은 자극적이고 원색적이다. 통사론적으로는 단순하고 간략해서, 문법적인 우여곡절은 거의 없는 편이다. 그러나 그 단순문들은 다양한 수사법을 활용하고 있어서 그것이 문체의 다양성까지 빚어낸다. 이 경우 단순문이 앞뒤 문맥이나 맥락에 따라 의미론적으로 다양해진다는 것도 지적할 만하다.

욕은 말놀이, 과장법, 대유법이나 은유법 등을 다양하고도 달변스럽게 활용한다. 욕하는 입은 실로 재고 그 혀는 뱀을 닮았다. “화내라, 뿔 내라, 네 가리 불난다.”는 동음 반복에 기댄 말놀이 내지 말장난이다. “제 에미 배에 발가락 박아서 생긴 놈”은 엄청난 과장법이다.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무의미(넌센스)의 진술이라고 부른다. 아니면 비리(非理)의 진술이라고 부를 만한 경지에 탐닉한 과장법을 종횡으로 활용한다. “뜨물 쏟아서 생긴 놈”도 그 보기의 하나이다. 이 때, 뜨물쏟기와 애기 만들기 사이에는 아무런 인과관계도 없는 것 같지만 뜨물쏟기가 남성의 사정행위에 견주어지고 따라서 뜨물이 정액에 견주어진 것이 상승해서 욕의 재미를 빚고 있다. 넌센스와 비유가 상승된 욕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여성을 “찢어진 것”이라고 할 때, ‘찢어짐’으로 여성을 지칭하는 것은 찢어짐이 여성 성기의 대유일 수 있기 때문이지만, 이것은 남성을 ‘말뚝 찬 놈’이라고 욕할 때와는 달리 심한 성차별을 자행하는 것이다.

한편, 욕은 직유를 가장 흔하게 잘 쓰고 있다. “헌 바지 구멍에 대강이 불거지듯”, “수캐 × 자랑하듯” 등이 그 본보기이다. 이 경우 직유의 엮어짐이 당돌스러울 만큼 엉뚱한 것이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견강부회(牽强附會)라고도 함직한 ‘억지의 끌어붙임’이 말의 재미가 되는 셈이다. 욕이 자주 또 널리 쓰일 수 있었다는 것은 언제나라고 해도 좋을 만큼, 거기에 ‘말의 재미’가 수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욕은 좀 ‘별난 재담’ 혹은 ‘사나운 재담’ 또는 ‘걸쭉한 재담’을 중요한 속성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로써 욕은 즐길 만한 민중의 화법 또는 화술로 한국인의 언어생활 속에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점을 강조한다면 욕은 ‘민중의 희극’으로 관찰됨 직하다. 탈춤 · 판소리 · 민요 등에서 욕이 익살의 중요한 원천이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독백의 자기비하가 아닌 상황, 말하자면 대화 상황에서 욕은 갈등의 언어가 된다. 대화에 임하는 사람들 상호간에 적개심, 증오가 개재되고 감정이 격화되면서 욕판이 벌어진다. 욕은 감정적인 싸움의 대화, 또는 대화의 싸움이다. 가령, 일부 지역의 계절적인 집단의 통과의례인 편싸움이 서두에서 욕의 편싸움을 벌이게 되는 예가 이런 점에서 매우 뜻 깊다. 육체적인 힘겨루기의 싸움판의 전주곡으로서 ‘욕싸움’이 기능할 때, 비록 흥돋우기를 겸하고는 있지만, 말싸움으로서의 욕의 면모가 약여(躍如)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대화가 합리적인 설명이나 설득을 포기하고 쓰게 되는 우격다짐의 폭력의 언어가 곧 욕이다. 감정의 폭발은 상대방에 대한 화자의 태도를 전달하는 것을 주된 기능이지만, 이같은 뜻의 욕은 정동적(情動的)인 언어다. 화자의 감정적 태도는 업신여김, 만만하게 보기에서부터 미움, 노여움, 저주까지 다양하다. “쏘아붙인다.”, “퍼붓는다.”, “쏟아붙인다.” 또는 “내뱉는다.” 등이 욕의 발화를 묘사하는 데 쓰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대화 현장에서 흠집내기의 욕은 이른바 ‘호(號)놈, 호년’으로 비롯한다. ‘호칭의 욕’으로 분류될 호놈 · 호년은 ‘이놈 저놈’, ‘이년 저년’ 등으로 나타난다. 놈은 때로 자식 · 새끼, 년은 계집(애) · 계집년 · 가시나 · 에미나이 등으로 대체된다. 이 때, 이미 신분 · 사회계층 · 나이 · 남녀 등에 따르는 한국어의 위계 질서는 완전히 붕괴되고 만다. 그런 뜻에서 욕은 사회적 무질서이자 반란이다. 욕은 갈등의 언어이면서 동시에 반란의 언어이다. 그래서 욕은 체면이고 얌치고 다 내던진 인격적인 알몸 상태를 노출한다. ‘호칭의 욕’인 ‘호놈 · 호년’이 욕의 시작이란 것은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인간적으로 비하 또는 실추시키는 것이 욕의 기본적 기능임을 시사한다. ‘이게 · 저게’(이것 · 저것)가 호놈 · 호년에 버금해서 쓰이는 것은 이 대명사들이 인간을 탈인격화해서 물체화하기 때문이다. “이게 얻다 대고?”라고 하는 것이 좋은 본보기다.

놈 · 연 · 것 앞에 관형어가 붙어서, ‘잡놈 · 잡년 · 잡것’, ‘쌍놈 · 년 · 것’ 또는 ‘도둑놈 · 년’, ‘화냥놈 · 년’, ‘죽일놈 · 년’이 되면 욕의 일차적인 기능이 탈인격화 내지 비칭화에 있음을 한결 더 증폭해서 노출한다. 이 같이 간단한 관형어가 붙은 호놈 · 년은 단순한 비칭에 더해서 상대방을 악덕한 인간으로 몰아붙이기까지 한다. 욕은 이렇게 해서 비칭화 이외에 악덕화라는 기능까지 덧붙게 된다. ‘호놈’(호년)이 그 자체로 맥락이 갖추어진 독자적인 욕이 될 수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그것들은 대화에서 욕의 시작이 되고 욕이 시작될 신호 구실을 하게 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호년 및 호놈이 자행되면 바야흐로 욕판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인격에 대한 전체적인 비칭화라고 규정될 만한 호놈과 호년을 앞세워서 육체 및 육체의 각 부위 및 행동에 대한 비칭화가 자행된다. 이 일련의 움직임이 곧 욕의 자기 발전의 과정이다. 뿌리에서 줄기가 돋고 가지가 치게 되는 것에 견주어도 좋을 것이다. 육신은 전체로 몸뚱어리, 몸통 등으로 비칭화되고 인상 내지 표정은 전체적으로 꼴, 꼬라지, 꼬락서니, 꼴딱서니, ‘생긴 것’ 등으로 비칭화된다. 육신의 세부는 육신의 각 부위 전체에 걸쳐서 매우 세분되어 자행된다. 몸통 전체가 철저하게 얕잡아지고 농명된다. 머리 꼭대기서부터 발끝까지 전 신체 부위가 망라된다.

머리 ― 대가리, 대갈빡, 대갈통

이마 ― 마빡, 이마짝

눈 ― 눈깔, 눈까리, 눈구멍

귀 ― 귀때기

코 ― 코빼기, 코대가리

입 ― 주둥이, 주둥아리, 아가리, 입나발, 아갈통

이 ― 이빨

혀 ― 혓바닥

턱 ― 턱주걱, 턱주가리

목 ― 모가지, 며가지

가슴 ― 가슴패기, 가슴짝

젖 ― 젖퉁이

젖꼭지 ― 젖꼭대가리

등 ― 등빼기

배 ― 배때기

배꼽 ― 배꾸멍

항문 ― 똥구멍

자지 ― 좆, 좆대가리, 좆대강이

보지 ― 씹, 씹구멍, 공알

팔 ― 팔몽둥이

손(목) ― 손모가지

가랭이 ― 좆가랭이, 씹가랭이

다리 ― 다리몽둥이

발(목) ― 발모가지

호놈(년)에서 인상의 비칭화와 신체의 비칭화로 나아간 욕은 행동의 비칭화로 진전됨으로써 일단 그 맥락을 완결짓게 된다.

행동 전체(명사) ― 짓, 짓거리, ∼질

행동의 묘사(동사) ― ∼짓하다, ∼하고 자빠지다, ∼질하다, 지랄하다, 꼴값하다, 놀고 있다, 방정떨다, ∼놀리다

발언 ― 씨부리다, 주둥아리 까다, 주둥아리 놀리다, 아가리질하다, 아가리 놀리다, 지껄이다

호놈에서 행동의 비칭화까지는 다음과 같은 보기로 일단 맥락이 갖추어진다. “이년이 꼴값한답시고 찢어진 아가리 함부로 놀리고 씨부리고 자빠졌네.”, “이 자식이 환장하고는 얻다 대고 손마지 함부로 놀리고 지랄이야.” 그러나 여기까지가 ‘묘사의 욕’이라면 그 범주 안에서 언제나 욕의 맥락이 종결되는 것은 아니다. 묘사의 욕은 ‘뭐가 어떻다’ 또는 ‘뭣은 뭣이다’와 같이 지정하되, 극히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지정에 치우치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통사(統辭)가 길어지면서 설명도 하게 된다. ‘묘사의 욕’이 ‘설명의 욕’을 겸하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욕은 묘사와 설명으로만 시종하지는 않는다. 묘사와 설명이 이미 부분적으로 감정이며 태도의 전달에 덧붙여서 화자의 비난이 상대방에 퍼부어진다. 이런 뜻에서 욕은 ‘비난의 욕’이 되거니와 그것은 ‘질타며 질책’ 등 공격성 강한 언어행위가 된다. 욕은 이에서 언어의 매질이나 언어의 난도질이란 성격을 드러내게 된다.

하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비난이 비판을 포괄하기도 한다고 보여진다. 그런 뜻에서 욕은 ‘민중의 비판’이 될 수 있다. 비난에는 비방과 야유 · 멸시 등이 포함될 수 있으나, 이 경우 그같은 언행이 모두 정당화되거나 합리화되기는 어렵다. 독선이나 편견, 이 외에 부당한 비방이나 오만 등이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비난의 욕은 ‘나쁜 놈’, ‘병신 같은 년’ 등의 보기가 보여주고 있듯이 ‘묘사의 욕’의 그대로 전용(轉用)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호칭의 욕, 묘사의 욕과 비난의 욕 외에 ‘의지의 욕’을 한 묶음으로 따로 범주화할 수 있다. 의지의 욕은 화자가 청자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되라는 소망을 전달하는 욕이다. 흔히 악담으로 호칭되는 욕들이 이 범주에 든다. 이것은 대체로 ‘뒤저라’, ‘벼락 맞으라’ 따위 저주로 표백된다. 비난의 욕에 내장되게 마련인 적개심과 증오심이 저주를 촉발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같이 남을 흠집내거나 상처내는 욕은 호칭의 욕, 묘사의 욕, 그리고 비난의 욕 및 의지의 욕 등으로 범주화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네 가지의 흠집내기의 욕이 문맥이나 상황에 따라서는 흠집내기에 시종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또한 그 네 가지의 것이 언제나 선을 그은 듯한 배타적인 독자성을 갖춘 것은 아니다. 아울러, 이 네 가지가 갖추어질 때, 한 단위의 욕이 완결되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해도, 그 완결성은 어디까지나 이론적 추상의 차원에 속하는 당위적인 형식의 완결성에 불과하다는 점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참고문헌

『욕 그 카타르시스의 미학』(김열규, 사계절출판사, 1997)
『이진사전·변강쇠전·배비장전·오유란전』(김기동·전규태 편, 서문당, 1994)
『한국의 판소리』(정병욱, 집문당, 1993)
『한국의 가면극』(이두현, 일지사, 1992)
『한국의 민속극』(심우성, 창작과 비평사, 1988)
『배비장전·옹고집전』(정병욱 교주, 신구문화사,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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