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5년(정조 19)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유의손(柳義孫) · 유분(柳坋) · 유숭조(柳崇祖) · 유헌(柳軒) · 송진문(宋振門) · 이익렬(李翊烈)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그 뒤 제단을 마련하고 유경수(柳景秀)를 추가배향하여 향사를 계속해오다가 1901년(고종 38) 용강서원(龍岡書院)이라 개칭하고 복원하였으며, 송은서(宋殷緖)를 추가배향하였다.
경내건물로는 3칸의 사우(祠宇), 신문(神門), 4칸의 용강정사(龍崗精舍), 4칸의 고사(雇舍), 대문 등이 있다. 사우에는 북벽(北壁) 좌측으로부터 유의손 · 유분 · 유숭조 · 유헌 · 송진문 · 유경수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고, 서벽(西壁)에는 따로 송은서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이익렬의 위패는 사우 곁에 매안(埋安)되어 있다.
용강정사는 강당으로,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으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강론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2월 중정(中丁 : 두 번째 丁日)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6변(籩) 6두(豆)이다.
유물로는『용강서원지(龍崗書院誌)』 1책 등 5권의 문헌이 있으며, 재산으로는 전답 2,000여 평과 임야 3,500여 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