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만행재문하삼도병진공한성(龍灣行在聞下三道兵進攻漢城)」은 조선 중기에 이호민(李好閔)이 지은 한시이다. 저자의 문집인 『오봉집(五峰集)』에 수록되어 있다. 칠언 율시로, 임진왜란 때 선조의 행재소가 있는 의주에 머물 때 남쪽 3도의 군사가 한양성을 공격한다는 소식을 듣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국왕의 착잡한 심경을 절실하게 그린 시이다. 홍만종(洪萬宗), 남용익(南龍翼), 김택영(金澤榮) 등 후대 문인들이 극찬한 시로, 『소화시평(小華詩評)』에도 전문이 실려 전한다.
칠언 율시이다. 이호민(李好閔, 1553~1634)의 문집인 『오봉집(五峰集)』 권 4에 수록되어 있다.
이호민은 임진왜란 시기에 이조좌랑으로서 왕을 수행하여 의주까지 갔고,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하였다. 그는 문장에 솜씨가 뛰어나 임진왜란 중 왕명으로 많은 글을 지어 바쳤다. 이때에 그가 지은 교서의 내용은 매우 간절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하였다고 한다. 이호민은 시에도 뛰어났다. 특히 「용만행재문하삼도병진공한성」은 임진왜란을 노래한 대표작으로 꼽힌다.
흔히 「용만시(龍灣詩)」라고 불린 이 작품은 선조의 행재소(行在所)가 있는 의주의 용만에서, 적의 수중에 들어간 한양성을 3도의 군사가 공격한다는 소식을 듣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국왕의 착잡한 심경을 절실하게 그린 것이다. 또한 이 시에는 임진왜란을 몸소 겪은 작자의 우국충정이 깃들어 있다. 원시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전란 중에 누가 노래자(老萊子)처럼 색동옷을 입으랴? 인간사 온갖 일에 갈수록 의욕이 사라지네. 지세(地勢)는 벌써 난자도(蘭子島) 땅끝에 다다랐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행인은 보지 못하겠네. 임금님은 갈피를 못 잡은 채 압록강 바라보시고 종묘의 운명은 처량하게 저녁 노을 마주하네. 남쪽에서 근래 들어 승전한다 들었나니 언제나 승리 거둬 서울을 회복할까? [干戈誰着老萊衣? 萬事人間意漸微. 地勢已從蘭子盡, 行人不見漢陽歸. 天心錯莫臨江水, 廟算凄凉對夕暉. 聞道南兵近乘勝, 幾時三捷復王畿?]”
「용만행재문하삼도병진공한성」은 『소화시평(小華詩評)』에 "제왕을 감동시킨 시"라는 평가와 함께 전문이 수록되어 있다. 남용익(南龍翼)이 『호곡시화(壺谷詩話)』에서 극찬한 시이기도 하다.
이 시는 정제된 시어가 매우 돋보이는 작품이다. 김택영(金澤榮)은 「용만시」 가운데에서도 특히 “천심착막임강수 묘산처량대석휘(天心錯莫臨江水 廟算凄凉對夕暉)” 구절은 고금에 없는 절창이라 하였으며, 이백(李白)이나 두보(杜甫)도 이 앞에서는 옷깃을 여며야 할 것이라 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