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백일은 1893년 1월 26일 전라남도 구례군 문천면 금정리에서 태어났으며, 7세부터 한문을 수학하고 11세에 선엄사에 들어갔으며 그 뒤 15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수도하였다.
1931년에 구례 구고미에서 ‘금산사미륵불교포교소’라는 간판을 걸고 증산교의 일파인 미륵불교를 포교하였다. 1947년에 용화교로 교명을 바꾸었다.
1950년에는 전주 완산동에 원각사(圓覺寺)와 완주군 우전면에 남일사(南一寺)라는 절을 세워 남녀 수좌 200여 명을 상주시키는 등 본격적인 포교활동을 시작했다.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 김제군 금산면 청도리 모악산 기슭에 ‘대한불교용화사’를 짓고 전국의 신도 수백 세대를 용화동으로 이주시켰다.
서백일은 용화동이야말로 후천개벽시 병겁(病劫)에서 살아남을 유일한 장소라고 주장하면서 신도들을 이 곳으로 이주시켜 재물을 헌금하게 하였다.
그후 여수좌들과의 추문으로 사회적 물의를 자아내다가 1966년 3월 27일 한 수좌의 칼에 맞아 죽었다. 그 뒤 이 교단은 ‘대한불교용화종’이라는 간판을 걸고 불교종단에 가입하여 불교화되었다.
신앙의 대상은 처음부터 미륵불을 신봉하였으나 이 미륵불은 물론 강증산(姜甑山)이었다. 증산이 스스로 미륵불의 화현이라고 주장하였고, 신자들은 증산을 석가 멸후 3000년에 올 미륵불이 출현한 것으로 믿었다.
이 교의 기본경전 중의 하나였던 ≪만법전 萬法典≫에 보면 “미륵불은 음기양발(陰氣陽發) 회천명(回天命) 개조화(改造化) 자로서 인신(人神) 중에 감히 당할 자가 없다.”고 되어 있다.
또한 “객망리(客望里)에 봄이 드니 미륵불이 나셨다.”라든지, “신미(辛未) 9월 19일에 미륵불이 탄생일세.” 등의 노래가 있는데, 이는 증산이 태어난 곳과 날짜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교의 주장은 후천이 개벽되고 용화선경(龍華仙境)이 도래되면 천지운화(天地運化)가 자연하여 천지인신(天地人神)이 일체화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런 선경이 오기 전에 전대미문의 대병란(大病亂)이 세상을 휩쓸고 소수만이 살아남아 후천선경의 주인이 된다고 하였다.
≪현무실기 玄武實記≫에 보면, 이 무서운 병은 군창용당(群倉龍堂)에서 난다고 경고하고, 이 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의통(醫統)이며, 광제창생은 의통에서 가능하다고 하였다.
경전은 ≪만법전≫ · ≪현무실기≫ · ≪용화보전 龍華寶典≫ · ≪심판서 審判書≫ · ≪공덕문 功德文≫ 등이 있고, 그 밖에 ≪미륵상생경 彌勒上生經≫ · ≪미륵성불경 彌勒成佛經≫ 등의 불교경전도 있다.
계율은 수좌들에게는 종신독신(從身獨身) · 계남녀지음리(戒男女之淫理) · 불살생(不殺生) · 지성근로(至誠勤勞) 등 15개 조항, 일반신도에게는 삼보(三寶)에 지성, 천은(天恩)에 지성, 불살생 · 화목 · 타인경대 · 보시 등을 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