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원주(原州). 증조는 응양군상호군(鷹揚軍上護軍) 원충갑(元沖甲)이고, 할아버지는 원대기(元大器)이며, 아버지는 원도(元道)이다.
1401년 (태종 1) 증광문과에 동진사로 급제하여 사관(史官)이 되고, 좌우대언(左右代言)을 거쳐 1418년 집현전 직제학(直提學)을 지냈다.
1419년(세종 1) 지신사(知申事)로 재직하던 중, 태종 때 설치된 신문고(申聞鼓)가 남용되는 폐단을 지적하고 그 철폐를 주장하였다.
1421년 의금부제조·이조참판 등을 역임하면서 태상왕봉숭도감제조(太上王封崇都監提調)·빈전도감제조(殯殿都監提調)를 담당하였다. 그뒤 대사헌 등을 역임하며 관기확립에 힘썼다. 1424년 뇌물수수의 혐의로 파직되었다가, 이듬해 인수부윤(仁壽府尹)에 복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