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주(仁州, 또는 慶源: 지금의 인천)사람으로 문종에게 3명의 딸을 왕비로 들여보낸 이자연(李子淵)의 손녀이며, 평장사(平章事) 이정(李頲)의 딸이다.
이 가문은 문종에서 인종에 이르는 100여 년간 10명의 왕후·비·빈을 배출하였다. 선종과 혼인하여 처음에는 원희궁비(元嬉宮妃)라 하였으며, 왕자 한산후(漢山侯) 왕윤(王昀)을 출산하였다.
그러나 선종이 죽은 뒤 어린 헌종이 즉위하자 왕비의 오빠 이자의(李資義)가 자신의 생질을 왕으로 추대하고자 반역을 꾀하였다는 죄명으로 왕의 숙부인 계림공(鷄林公, 肅宗)에 의하여 처형되었다.
숙종 즉위 후 원신궁주도 여기에 연루되어 왕자 한산후와 함께 경원군에 유배되었으며 그뒤의 생사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1101년(숙종 6)에 이자의사건 연루자에 대한 사면령이 내려졌고 예종 즉위 후에는 소환, 복직되기도 하여, 이자겸(李資謙)과 같은 인물은 딸을 예종의 왕비로 들여보내기까지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