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목현비(敬穆賢妃)는 청주(淸州) 출신, 중서령(中書令)에 추증된 왕가도(王可道)의 딸이다. 현종의 제9비 원질귀비(元質貴妃)와 자매간이다.
왕가도의 본명은 이자림(李子琳)인데, 현종대에 일어난 무신 김훈 · 최질의 난(金訓 · 崔質의 亂)을 진압하고 국정을 왕에게 되돌림으로써 출세하기 시작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치성공신(致盛功臣) 호를 받아 정계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고, 이 후 순조로운 성장의 길을 밟아 참지정사(參知政事, 종2품)에 임명되면서 재상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또, 왕가도는 거란의 침입으로 황폐화된 국도 개경의 나성(羅城)을 축조하는 등 국방에도 많은 힘을 기울였는데, 그 공으로 현종으로부터 수충창궐공신(輸忠創闕功臣) 호와 함께 왕씨 성을 하사받았다. 이러한 공으로 왕실과의 혼인이 맺어지게 되었다. 왕가도의 정치적 위치는 현종이 죽은 뒤 그 아들 덕종(德宗)이 즉위하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덕종은 즉위하면서 왕가도의 딸을 맞아들여 현비(賢妃)로 책봉하고 왕가도를 승진시켰으며, 감수국사(監修國史)에 임명하여 실록 편찬의 책무를 맡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1033년(덕종 2) 왕가도의 대거란 강경책이 반대 세력에 의하여 거부되자 왕가도는 신병을 구실로 정계를 은퇴하고, 현비의 위치도 흔들리게 되었다.
덕종과 혼인한 시기는 가장 먼저였지만, 3년 뒤에 혼인한 현종의 공주인 경성왕후(敬成王后) 김씨(金氏)에게 제1왕후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다. 덕종과의 사이에 상회공주(殤懷公主)를 낳았다.
시호는 경목(敬穆)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