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원부인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전기, 제1대 왕 태조의 제15 왕비.
인물/전통 인물
성별
여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미상
출생지
광주(廣州)
관련 사건
혜종 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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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광주원부인은 고려 전기 제1대 왕 태조의 제15 왕비이다. 경기도 광주 사람으로 대광 왕규의 딸이다. 왕규는 경기도 광주 출신으로 두 딸을 태조, 혜종에게 드렸는데 광주원부인은 태조의 왕비 중 하나이다. 혜종대의 왕위 다툼 과정에서 왕규가 살해당하면서 광주원부인도 죽었거나 축출된 것으로 보인다.

정의
고려 전기, 제1대 왕 태조의 제15 왕비.
가계 및 인적사항

경기도 광주(廣州) 사람으로 대광(大匡) 왕규(王規)의 딸이다. 왕규는 두 딸을 태조(太祖), 혜종(惠宗)에게 혼인시켜 왕실과 삼중 혼인을 하였다.

주요 활동

왕규는 원래 경기도 광주 출신으로 본래의 성은 함씨(咸氏)였다. 그러다가 태조 왕건(王建) 때에 국가에 크게 공헌한 대가로 왕씨(王氏) 성을 하사받은 것으로 보인다. 태조는 고려를 세운 뒤 호족세력(豪族勢力)을 통합하는 방법의 하나로 혼인정책을 추진하였는데, 그 대상은 자신의 즉위를 도와준 무장세력, 학문적 능력을 가진 문사층, 귀부해 온 지방 호족 및 신라 왕족과 같은 광범한 세력이었다.

그런데 왕규는 학문적 능력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던 인물인 듯하다. 937년(태조 20) 중국의 후진(後晉)에 사신으로 가서 석경당(石敬瑭)의 등극을 축하하였기 때문이다. 태조가 죽을 무렵에는 곁을 지키는 등 태조의 측근으로 활약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태조가 승하하고 혜종이 즉위하자 왕규는 자신의 외손자이며 태조 제16비 소광주원부인(小廣州院夫人) 소생인 광주원군(廣州院君)을 왕위에 추대하기 위하여 혜종을 시해하고자 하였다.

혜종이 죽은 뒤에는 태조의 왕위계승 다툼에 휘말려 죽음을 당하였다. 그 와중에서 왕규의 일당 3백여 명이 같이 죽임을 당하였는데, 왕규의 딸인 광주원부인(廣州院夫人)이 무사하였을지는 의문이다. 살아 있었다고 하더라도 반역자의 딸은 왕실에서 축출되는 예가 많으므로 왕비의 자리에서 밀려났을 것으로 짐작된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단행본

김갑동, 『고려전기 정치사』 (일지사, 2005)
김창현, 『광종의 제국』 (푸른역사, 2008)
이기백 외, 『고려광종 연구』 (일조각, 1981)
정용숙, 『고려시대의 후비』 (민음사, 1992)
하현강, 『한국중세사연구』 (일조각, 1988)

논문

강희웅, 「고려혜종기 왕위계승난의 신해석」 (『한국학보』 7, 일지사,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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