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량원부인은 고려 전기 제1대 왕 태조의 제28 왕비이다. 아버지는 박수경인데, 그는 평주 출신으로 태조 왕건에게 충성을 다한 인물이다. 후백제 견훤과의 조물군 전투에서는 그의 부대만이 승리하였고 발성 전투에서는 위기에 빠진 태조를 구하기도 하였다. 그 공으로 역분전을 제정할 때 그에게 특별히 전 200결을 주었다. 정종의 즉위에도 공로를 세웠고 광종 즉위 후에도 국초에 공로를 세운 자들에게 곡식을 하사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광종의 호족 숙청 과정에서 아들 3명이 투옥되자 화병으로 죽었다.
평주 지방은 신라의 패강진(浿江鎭)이 설치되었던 곳으로서 육군력의 집결지였다. 그러므로 태조(太祖)는 이 지역 군사력을 자신의 지원 세력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많은 후비(后妃)를 이곳에서 맞이하였는데, 특히 박씨 가문에서만 3명의 후비를 맞아들였다. 박수경의 딸을 비롯하여 형 박수문(朴守文)의 딸, 그리고 그의 누이 등 3명이 태조 왕건의 후비가 되었다. 그만큼 평주박씨 가문의 지원이 태조에게는 필요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박수경은 지모가 뛰어나 전쟁에 나가면 매번 승리하였고, 견훤(甄萱)과의 싸움에 참전하여 조물군(曹物郡) 전투에서는 그의 휘하 부대만 승리하였고, 발성(勃城) 전투에서는 태조가 후백제군에게 포위되는 고전을 치를 때 위기에서 구출해 냄으로써 크게 전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3대에 걸쳐 삼한공신(三韓功臣)으로 책봉되었고, 태조가 신하들의 공로를 생각하여 역분전(役分田)을 지급할 때 박수경에게는 특별히 전(田) 200결을 특사하였다고 하니, 박수경의 군사적 지원이 태조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는 짐작이 가능하다.
박수경 일가는 정종(定宗) 즉위에도 공을 세우는 등 광종(光宗) 즉위 때까지 그 세력이 건재하였다. 그리하여 박수경은 광종의 명을 받아 국초(國初)에 공을 세운 사람들의 등급을 나누고 이에 따라 곡식을 나누어 주도록 하였다. 그러나 광종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제도를 개편하고 호족 세력을 숙청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박수경의 아들 3형제가 투옥되었으므로 박수경은 화병이 나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