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淸州) 사람으로 중서령(中書令)에 추증된 왕가도(王可道)의 딸이며, 덕종의 제2비 경목현비(敬穆賢妃)와 자매간이다.
왕가도의 본명은 이자림(李資琳)이다. 현종대에 일어난 무신 김훈(金訓)·최질(崔質)의 난을 진압하고 국정을 왕에게 되돌림으로써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고, 이후 순조로운 성장의 길을 밟아 재상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또 거란의 침입으로 황폐화된 국도 개경의 나성을 축조하는 등 국방에도 많은 힘을 기울였는데, 그 공으로 현종에게서 사성받아 왕씨가 되었다. 왕가도는 대내외적 위기상황에서 적절한 대응책을 강구하는 능력으로 성장하였고, 그같은 활약이 크게 돋보여 현종은 왕가도의 딸을 제9비로 맞이하게 되었으며, 왕가도의 도움으로 왕실이 안정되기를 기대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왕가도의 위치는 현종을 뒤이은 덕종에 와서도 이어져 덕종은 즉위하면서 왕가도의 작은딸을 다시 왕비로 맞아들이게 되었으나, 대거란외교정책을 둘러싼 강온 양파의 대립으로 왕가도는 실각하고 왕실혼인 또한 중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