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0년(인조 8)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김주(金澍)·하위지(河緯地)·이맹전(李孟專)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37년(인조 15)하위지(河緯地)를 추가배향하였고, 1694년(숙종 20)에 ‘월암(月巖)’이라고 사액되었으며, 같은 해 이맹전(李孟專)을 모셨다. 당시의 경내건물로는 묘우(廟宇)·신문(神門)·강당(講堂)·동재(東齋)·서재(西齋)·전사청(奠祀廳)·주소(厨所) 등이 있었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뒤 복원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