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광(大匡) 영장(英章)의 딸이다. 출신지 및 성씨에 대해서는 기록이 누락되어 알 수 없다. 태조 후비 가운데 관계기록이 거의 누락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처럼 기록이 인멸된 이유는 고려 왕실에서 차지하는 후비의 위치가 높지 못하였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태조는 고려를 세운 뒤 호족세력을 통합하는 방법의 하나로 혼인정책을 추진하였다.
그 대상은 즉위를 도와준 무장세력, 학문적 능력을 가진 문사층, 귀부해온 지방호족 및 신라왕족과 같은 광범한 세력이었다.
월화원부인이 제23비의 자리에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 가문이 신라왕족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기 때문에, 이를 제외한 다른 방법으로 태조를 도왔을 것이며, 이러한 도움에 대한 보답으로 태조는 월화원부인을 후비로 맞아들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