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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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옷 / 여아 저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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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의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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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의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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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우리 나라 어린이 복장이 어떠했는지 자세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고종 때의 ≪궁중발기 宮中撥記≫에 의하면 왕자의 삼칠일 의대(衣襨)로는 배자·누비민분홍저고리·누비민옥색저고리·민바지·누비두렁이·백오목이·초록누비천의·끈 등이다.

백일옷은 관·아청복건·양남촉사래·분홍누비두루마기·양남쾌자·초록배자·분홍옥색저고리·누비겹백바지·세저포행전·오목이·두록천의·누비끈 등이다.

배자는 일명 등거리라고도 한다. 소매 없이 양옆이 트이고 쌍깃으로 저고리 길이와 같다. 겉은 비단이고 안은 전(氈)과 같이 두터운 것을 사용한 방한용 옷으로, 나중에는 양옆을 봉합하고 안에는 깃털을 넣기도 하였다.

누비두렁이는 두렁치마라고도 하며, 치마같이 만들어 앞에서 뒤로 둘러입는 방한용 옷이다. 오목이는 타래버선이라고도 하는데, 버선목에 대님을 달아 발목에 묶고 화조문을 수놓아 예쁘게 꾸민 버선이다. 천의는 아기를 업고 덮어 싸매는 포대기이다.

복건(幅巾)은 조선시대에 유사(儒士)와 도사(道士)들이 많이 쓰던 것이다. 검정색 갑사(甲紗)로 만들고 머리 앞단 도련에 끈을 달아서 목 뒤에 맺던 관모이다. 양남쾌자는 남색 전복(戰服)으로 배자(背子) 또는 답호(褡護)라 하는 소매 없는 옷이다.

세저포로 만든 행전(行纏)은 바지통이 아래로 처지지 않도록 발목에서 정강이까지 눌러 맺는 것이다. 주로 여행할 때나 상사(喪事) 때 상복(喪服)에 착용한다.

왕자가 성장하여 10세 가까이 되면 남색용초용포(藍色龍綃龍袍)·남쾌자·청옥색두루마기·백한삼·안동포고의·백행전·백족건 등을 갖춘다고 하였다. 한삼(汗衫)은 적삼이고 고의는 바지이며 족건(足巾)은 버선의 궁중어이다. 이상이 궁중제도이다.

일반 양가에서는 명절이나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돌쟁이에서 4, 5세 여아는 저고리·치마와 풍차바지에 배자와 두루마기를 입고, 머리에는 도투락댕기를 맺으며 자주색굴레 또는 검정색 조바위를 썼다. 또 타래버선과 수혜(繡鞋)라는 아름다운 꽃신을 신고, 고름에는 오색찬란한 노리개를 달고, 허리에는 염낭주머니나 귀주머니를 찼다.

풍차바지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어린이에게 편리하도록 밑을 트고 제물무를 달아서 뒤로 여미며 조끼허리를 단 바지이다. 도투락댕기는 혼례 시 신부의 큰댕기와 같은 것이나 길이가 짧고 끈을 달아서 머리 뒤에 바짝 맺도록 한 것이다.

굴레는 머리에 씌우는 모자인데 등 뒤로 세 가닥의 모군(帽裙)이 달려 있는 것이 특색이다. 화조수복문(花鳥壽福文)을 수놓아 화려하게 꾸미고 겨울에는 검정비단, 춘추에는 갑사로 만든다.

조바위는 양가집 부녀층에서 많이 썼던 방한용 모자이다. 검정색비단으로 뺨이 닿는 부분을 동그랗게 하여 귀를 완전히 덮고, 앞이마와 머리 뒤편에 구슬을 꿴 끈을 매달고, 술로 장식한 것이다. 어린이용은 금박과 수를 놓아 아름답게 한다.

남자아이들은 저고리·풍차바지·조끼·마고자를 입고 타래버선을 신었다. 그 위에 두루마기와 전복을 더하고 복건을 썼다. 신발은 주로 유혜(油鞋)라 하여 가죽을 기름에 절이고 바닥에 징을 박은, 속칭 징신이라는 것을 신었다. 조끼와 마고자는 최근세에 생긴 옷으로 옛날에는 없었다.

참고문헌

『한국복식사연구』(류희경,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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