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길 ()

목차
천주교
인물
조선후기 기해박해 당시의 순교자.
이칭
이칭
아우구스티노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91년(정조 15)
사망 연도
1839년(헌종 5)
출생지
서울특별시
관련 사건
기해박해
목차
정의
조선후기 기해박해 당시의 순교자.
내용

세례명 아우구스티노. 자는 용선(用善), 본관은 한양이다. 서울의 역관(譯官)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1807년(순조 7) 역과에 합격하였다. 학문에 뜻을 두고 많은 서적들을 통독하던 중 우연히 『천주실의(天主實義)』를 알게 되어 읽고, 천주교에 흥미를 느껴 교리를 터득한 뒤 1823년경에 입교하였다.

이 때 성직자영입운동을 전개하던 정하상(丁夏祥)을 만나, 역관의 신분을 이용하여 북경교회와의 연락과 성직자영입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1824년(순조 24) 동지사의 수석역관으로 북경에 들어가 세례를 받고, 그 뒤로는 북경교회와의 연락을 담당, 1825년(혹은 1824년) 교황에게 성직자파견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북경주교에게 전달하는 등 여러 차례 걸쳐 북경을 내왕하면서 조선교회의 사정을 알렸다.

그 결과 1831년 조선교구가 설정되고, 1834년 중국인 유방제(劉方濟 즉 여항덕) 신부, 1836년 모방(Maubant)신부, 1837년 샤스탕(Chastan)신부와 앵베르(Imbert)주교를 맞아들인 수 있게 되어, 조선교회는 비로소 모든 조직을 갖춘 교회로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자 그도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았으나, 서양성직자영입의 책임은 모두 자기에게 있음을 확언하면서 호교론을 펴 박해의 부당성을 주장하였다. 결국 모역죄로 몰려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정하상과 함께 참수되어 49세를 일기로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복자위에 올랐고, 1984년 5월 시성(諡聖)되었다.

참고문헌

『헌종실록(憲宗實錄)』
『사학모반죄인양한진길등국안(邪學謀叛罪人洋漢進吉等鞠案)』
『한국천주교회사(韓國天主敎會史)』(Dallet,C.C. 저, 최석우·안응렬 역주, 분도출판사, 1980)
집필자
이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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