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을수는 한국전쟁 이후에 골롬바사, 구산후생학교, 인보성체회 등을 설립한 사제이다. 1920년 예수성심신학교에 입학해 1932년 사제품을 받고 한국천주교회 사제로 처음으로 프랑스 파리대학에서 1939년에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1년에 사회사업 재단인 골롬바사를 설립해 사회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1956년 여자전문학교인 구산후생학교를 설립하고 1957년 교내에 수도반을 만들어 수녀 양성을 시작하였다. 사제로서 교육과 사회사업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1963년에 대한민국 문화훈장 구호 자선 부문 대통령장 표창을 받았다.
호는 새감, 주5은 주3 음력 1907년 10월 2일에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용리에서 부친 윤창규 이냐시오와 모친 임 골롬바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주6지역에서도 가장 먼저 교우촌이 형성되었다는 당진 원머리와 아모골에서 자랐다.
당시 구합덕 본당의 주임 주7로 원머리 공소를 방문하던 라리보(Adrien Joseph Larribeau, 1883~1974) 신부의 권유로 1920년 9월 13일에 예수성심신학교에 입학하였다. 부친 윤창규는 예산 지역의 이름난 주8으로 합덕성당에서 예산성당이 분리될 무렵 성당 부지를 기증하여 성당 건축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친형 윤갑수 시몬은 1950년 9월 27일에 공산군에 의하여 예산 관양산에서 처형되었다.
1932년 12월 27일, 종현성당(현, 서울 명동성당)에서 주9을 받고 장호원(현,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성당의 보좌 신부로 부임하였다. 1934년에서 1937년까지 소신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1937년에 프랑스 파리대학에 입학하여 한국인 신부로는 처음으로 1939년 7월에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논문 「한국유교사론(Le Confucianisme en Corée)」애서는 유교가 한국 사상의 핵심이며 모든 활동의 주10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논문은 한국사상사 연구에서 선구적인 의미를 갖는다.
1939년부터 1940년까지 파리 바오로 국제 고등학교 교원으로 재직하고, 1941년에 로마 라테라노 대학에서 주11을 연구하였다. 그해 미국으로 가서 뉴욕문화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조선 가톨릭회’를 조직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
1948년에 귀국하여 성신대학 2대 학장으로 1948년 3월부터 1950년 1월까지 부임하였다. 한국전쟁의 참상을 보고 1951년에 사회사업 재단인 ‘골롬바사’를 설립하고, 같은 해 골롬바 어린이집을 창설하였다. 1953년에 청평 친애원의 원장으로 부임하고, 1954년부터 1960년까지 청평본당 주임 신부를 지내면서 1955년에 청평성당을 건립하고 청평본당 소속 공소를 건축하였다.
1956년 11월 19일, 경기도 부천에서 구산후생학교를 주2 1957년 3월 1일, 구산후생학교 내 사회반과 수도반으로 나누어 인보성체회 수녀 양성을 주4 또한 1958년부터 1964년까지 해마다 성체 주12과 서원식을 거행하였다. 그리고 본당 신부가 없는 주13의 공소나 섬지방에 수녀들을 파견하였다. 1958년에는 성 라자로 요양원 원장으로 부임하였다. 1961년에 경상남도 충무(현, 경상남도 통영시)의 충렬여중과 여상을 인수하여 운영하였고, 1962년에 인보기술학교를 설립하고 아동 양육 시설인 덕산신생원을 인수하였다.
1967년부터 미국 뉴욕 스태튼 아일랜드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도움이신 성모성당과 뉴저지 주의 파티마 성모 성당에서 주14 활동을 하다가 1971년 2월 6일에 귀국하였다. 그해 5월 9일에 주15, 용산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었다. 2001년 8월 3일에 인보성체수도회 용인수도원묘지로 이장되었다.
월간 잡지 『가톨릭청년』에 성경에 대한 여러 편의 글을 발표하였는데, 1934년 1월에 「관능의 철학적 해석」 시작으로 1935년까지 「가톨릭성서관」, 「성전경전서목」, 「위성서」, 「성서원문」, 「성서역문의 역사적 고찰」, 「성서해석에 대한 고찰」, 「성서에 대한 성신감도」, 「성서에 대한 고유한 특장」, 「창세기」, 「출애급기」,「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우리의 현세생활」, 「여호수아기」 등이다. 가톨릭 정신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으로 『가톨릭 연구』에 1934년 1월호부터 1936년 4월호까지 2년 4개월에 걸쳐 「호교요론(護敎要論)」 18편을 발표하였다.
성 니콜라오 소신학교 교사로 재임하면서 1936년에 라틴어-한글 사전인 『라선대자전(羅鮮大字典, Dictionarium Latino-Coreanum)』을 번역 출간하였다.
라틴어로 쓰여진 『구약약사(舊約略史, Epitome historiae sacrae)』(1935), 『로빈슨 크루소(Robinson Crusoeus)』(1936), 『준주성범(遵主聖範)』(1942)을 번역하였다. 미국에 있던 1968년에서 1969년까지 『준주성범』을 새로 번역하여 인보성체수도회에서 『그리스도를 따라』(2004)라는 제목으로 간행하였다.
1963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문화훈장 구호 자선 부문 대통령장 표창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