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 민씨(閔氏). 본관은 여흥(驪興). 처음의 법명은 관식(慣拭), 뒤에 고친 법명은 응윤. 법호는 경암(鏡巖). 경호(鏡湖) 출신. 어머니인 오씨(吳氏)가 계명산(鷄鳴山)에서 기도하여 그를 낳았다.
3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5세 때 서당에서 공부를 시작하여 9세 때에는 경사(經史)에 능통하였다. 이해 가을에 아버지의 명으로 “가을이 깊으니 바람은 대나무를 움직이고, 물이 떨어지니 달은 내를 울리네. 어느 곳으로 볕을 따라가는 기러기인가. 쓸쓸하게 멀리 하늘로 들어가누나(秋高風動竹 水落月鳴川 何處隨陽雁 蕭蕭遠入天).”라는 시를 지었다.
13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입산하여 진희장로(震熙長老)에게 머리를 깎고 한암(寒巖)으로부터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추파(秋波)의 문하에서 공부를 마치고 28세 때 개강(開講)하여 후학을 양성하기 시작하였다.
20년이 지난 어느날 “많은 보배가 있은들 남의 보배인데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라고 하며 환암(喚庵)의 문하에서 참선에 몰입하여 선지(禪旨)를 얻었다. 만년에는 두류산(頭流山) 정상에 움막을 짓고 2, 3명의 제자와 함께 매일 네번씩 정진을 하면서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1804년 1월 13일 대중으로 하여금 서쪽을 향하여 염불하게 하고는 임종게(臨終偈)를 남기고 입적하였다. 입적 후에 문인들이 그의 시문을 모아 『경암집(鏡巖集)』 3책을 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