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한씨(淸州韓氏). 법호는 화악(華嶽). 삼각산에 오래 머물렀다 하여 삼봉(三峰)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상덕(尙德)이다. 견불산 강서사(江西寺)로 출가하여 성붕(性鵬)의 제자가 되었다.
금강산과 보개산(寶蓋山)에 오래 머물렀는데, 『수능엄경(首楞嚴經)』을 만 번 읽고 도를 깨쳤다. 행장에 의하면, 영특하여 불교학에 통달하고 꾸준한 행실과 뛰어난 문장력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쳤으며, 김정희(金正喜)와 교의가 두터웠다.
문손(門孫)인 혜소(慧昭)는 『삼봉집(三峰集)』 발문에서, “사미(沙彌) 때 그를 금강산유점사(楡岾寺)에서 뵈니, 칠순에 접어들었는데 용모는 단정하고 우아하였으며, 정신은 청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목소리도 낭랑하고 만면에 자비를 띠고 사람들을 교화하므로 부처의 출세인 듯 여겼다.”고 기록하였다.
1839년 5월 5일 금강산장안사(長安寺)지장암(地藏庵)에서 임종게(臨終偈)를 남기고 입적하였다. “한없는 세월 동안 여러 선행을 두루 닦으니, 만법은 하나로 돌아가고 하나는 공으로 돌아가네. 자가의 본래 일을 이루지 못하니, 구십 년 세월이 허황한 꿈이더라(窮劫歷修諸善行 萬法歸一一歸空 自家本事未成就 九十年充幻夢中).”
통도사(通度寺)와 운봉사(雲峰寺)에 초상화가 봉안되어 있고, 100여 명 제자 가운데 화담 경화(華潭敬和)가 가장 뛰어났다. 저서로는 문집인 『삼봉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