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감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도승지, 형조참판,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언신(彦信)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우계(羽溪, 지금의 강원도 강릉)
주요 관직
병조참판|도승지|형조참판|대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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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도승지, 형조참판,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우계(羽溪). 자는 언신(彦信). 아버지는 참판 이광식(李光軾)이며, 어머니는 이세응(李世應)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43년(중종 38)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그해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545년(명종 즉위년) 예문관봉교로 있으면서 중국에 보내는 자문(咨文)의 글씨를 잘 써서 칭찬을 들었으며, 이어 정언이 되어 윤원형(尹元衡)·윤춘년(尹春年)과 결탁, 사류를 공격하는 데 가담하였다.

이어 사헌부·홍문관의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특히 무재를 인정받아 1552년 함경도순변사 이준경(李浚慶)의 종사관(從事官)에 임명되기도 하였고, 종성부사로 변경수비를 맡기도 하였다. 1558년에는 성절사로 중국에 다녀오기도 하였으며 승지·경상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뒤 윤원형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량(李樑)이 중용되어 국정을 전단하자, 시세에 좇아 이량의 심복이 되었다. 이량의 후원하에 병조참판·도승지·형조참판 등 요직을 두루 거쳐 1563년 대사헌에 기용되었다.

이때 이량의 사주로 이문형(李文馨)·허엽(許曄)·기대승(奇大升)·윤근수(尹根秀) 등 당시 명망 있던 사림을 탄핵하여 밖으로 내쫓으면서 다시 한 번 사림에게 대대적인 타격을 가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를 막으려는 심의겸(沈義謙)의 노력으로 도리어 홍문관부제학 기대항(奇大恒)에 의하여 탄핵받아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되었다.

명종 말엽 윤원형세력이 몰락하고 사림들이 득세하자, 양사 및 홍문관에서 여러 차례 죄를 주자고 주장하였으나 왕의 중재로 무마되었다. 그뒤 1581년(선조 14) 천재가 심하여 대사면이 단행되자 방면되었다.

참고문헌

『인종실록(仁宗實錄)』
『명종실록(明宗實錄)』
『선조실록(宣祖實錄)』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대동야승(大東野乘)』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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