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석운동에 위치한다. 1985년 9월 20일에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전주이씨 백헌공파 종중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이경석(李景奭, 1595~1671)의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호는 백헌(白軒)이다. 그는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 1623년(인조 1)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 때 인조를 호종한 공을 세웠다. 남한산성(南漢山城)에서 내려와 항복했을 때 예문관 제학으로 삼전도(三田渡) 비문을 지었다. 이후 대제학, 판서를 거쳐 1649년(효종 즉위)에 영의정에 올랐다.
묘가 있는 위치는 청계산(淸溪山)의 서남쪽 구릉인 석운동의 대감능골이다. 봉분은 단분(單墳)이며 부인 전주유씨(全州柳氏)와의 합장묘이다. 봉분 뒤편은 2단의 사성(莎城)을 두르고 봉분 앞에는 상석(床石)과 향로석(香爐石)이 있으며 그 앞에 장대석(長臺石)으로 계절(階節: 무덤 앞에 평평하게 만들어 놓은 땅)을 만들었다. 봉분의 오른쪽에 묘비가 있고 정면에는 근래에 만든 장명등(長明燈)이 배치되었으며 좌우로 망주석(望柱石)과 문인석을 세웠다.
대리석으로 된 묘비의 규모는 높이 162㎝, 너비 53㎝, 두께 22㎝로, 1751년(영조 27)에 세워졌다. 앞면에는 ‘유명조선국영의정문충공백헌이선생경석묘정경부인전주유씨부좌(有明朝鮮國領議政文忠公 白軒李先生景奭墓貞敬夫人全州柳氏祔左)’라고 쓰여 있다. 뒷면은 현손(玄孫) 이광회(李匡會)가 글을 짓고, 종현손(從玄孫: 형제의 현손)인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가 글씨를 썼다.
묘역 입구에는 1754년(영조 30)에 세워진 신도비가 있는데, 비문은 박세당(朴世堂)이 글을 짓고 이광사(李匡師)가 글씨와 전액(篆額)을 썼다. 그러나 워낙 마모가 심하여 1975년 바로 옆에 새로운 신도비를 세웠다. 새로운 비의 규모는 총높이 475㎝, 비 높이 259㎝, 너비 84㎝, 두께 40㎝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