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0년(숙종 6)에 체부병방(體府兵房)으로 있으면서, 어영대장 김익훈(金益勳)의 심복이 되어 허견(許堅)의 집을 여러 차례 왕래하면서 정탐하였다.
이어 정초청(精抄廳)에서 정원로(鄭元老)·강만철(姜萬鐵)을 데리고 승정원에 나아가 역모를 고변하게 하여, 이른바 허견의 옥을 일으킴으로써 남인세력을 일망타진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로 인하여 보사공신(保社功臣) 3등에 추록되어 용계군(龍溪君)에 봉하여졌으며 이어 영변부사에 임명되었다.
이때 영변부의 약산성(藥山城)·철옹성(鐵甕城) 등을 보수, 증축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서인이 몰려나고 남인이 집권하자 참형을 당하였고, 공훈도 삭탈되었다가 1694년에 서인이 재집권하면서 복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