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에서 출생하여 송화군 송화면 내리에서 살다가 광복 후 월남하여 서울특별시 성북구 송천동에서 살았다. 해주농업학교를 졸업하였고, 서울에서 한국민속예술연구원(韓國民俗藝術硏究院)을 설립하여 원장을 지냈으며, 국악예술학교 강사도 역임하였다.
15세 때부터 오순옥(吳順玉) · 이치오(李致五)에게 해주탈춤을 배워 50여 년간 춤을 추었고, 월남하여 「봉산탈춤」 연희자 민천식(閔千植) · 김진옥(金振玉)과 함께 봉산탈춤을 가르쳤으며,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하여 공로상을 받은 바 있다. 1965년 제5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하여 공로상을 받았다. 1967년 6월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봉산탈춤」의 목중 · 취발이 · 사자춤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후계자로 김기수(金璂洙) · 김종엽(金鍾燁) · 조운룡(趙雲龍)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