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성시 미양면 구수리에 위치한다. 1975년 9월 5일에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덕남(李德南)의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윤보(潤甫)이다. 안성 출신으로 20세 때 무과에 급제한 후 선전관을 역임하였다. 훈련원 부정 재직 당시에 이순신과 함께 유성룡(柳成龍)의 천거를 받았으나 임진왜란 직전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으로 낙향하였다. 이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향에서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수차례 격퇴하였다. 또한 그는 용인·죽산 등지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다가 안성 서운산성(瑞雲山城)에서 왜적의 기습공격으로 전사하였다.
봉분은 쌍분(雙墳)이며 부인과의 합장묘이다. 묘비 이외에는 일체의 석물이 없었으나, 1975년에 후손들이 상석(床石), 향로석, 장명등, 망주석과 무인석 각 1쌍, 오석제(烏石制) 묘비를 다시 세웠다.
원래의 묘비는 묘역에서 약 80m 앞쪽에 세웠다. 이 묘비는 팔작지붕형 가첨석(加檐石)에 비신(碑身)은 상부가 넓고 하부가 좁은 구조이다. 비문은 영조대 학자인 윤봉구(尹鳳九)가 지었고, 홍봉조(洪鳳祚)의 글을 김진상(金鎭商)이 새긴 것이다. 묘 아래쪽에는 1687년(숙종 13) 병조참의(兵曹參議)에 추증하면서 세운 정려각(旌閭閣)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