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계윤(季潤). 태종 때의 영의정 이직(李稷)의 6대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윤식(李允湜)이다. 생부는 이공집(李公楫)이며, 어머니는 신영화(申永和)의 딸이다. 이정(李挺)에게 입양되었고, 윤임(尹任)의 사위이다.
1543년(중종 38) 진사시에 합격하고, 1544년(중종 39)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정원주서가 되었다. 이어서 인종이 즉위하자 총애를 받아, 측근에서 기사관(記事官)으로 활약하다가 인종이 급사할 때 임종을 지켰다.
명종이 즉위하자 소윤의 윤원형(尹元衡)·임백령(林百齡) 등이 정세의 전환을 모색하던 중, 문정왕후를 움직여 대윤의 윤임·유관(柳灌)·유인숙(柳仁淑) 등을 처형하고, 이어서 안세우(安世遇)의 밀고로 투옥되었다. 이덕응은 임백령 등의 위협으로, 많은 사람들이 중종의 후궁 소생인 봉성군(鳳城君)을 추대하여 역모를 꾸몄다고 무복(誣服)하여 이휘(李輝)·나숙(羅淑) 등 10여 명이 처형되도록 하였고, 자신도 효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