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의백(宜伯). 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이휘조(李徽祚)이고, 아버지는 이구령(李九齡)이며, 어머니는 신육(申堉)의 딸이다.
1702년(숙종 28)에 진사가 되고, 1712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갔다.
1718년 정언(正言)으로 있을 때에 원임대신 이이명(李頤命), 이조참판 이희조(李喜朝) 등을 탄핵하다가 도리어 밀양으로 유배되었다. 그 뒤 경종이 즉위하여 소론이 집권하자, 중용되어 홍문관의 수찬(修撰)·교리(校理)를 거쳐 이조정랑·헌납(獻納)을 지냈고, 대사간에 이르렀다.
영조가 즉위하고 노론이 집권하면서 김일경(金一鏡)의 상소에 동참하였다는 죄로 귀양을 갔고, 1728년(영조 4) 무신란(戊申亂)에 연루되어 고문을 당하다가 죽었다. 그 뒤 1755년에 역률(逆律)로 추시(追施)되었으며, 순종 때 복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