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치경(穉卿), 호는 회백(悔百). 효령대군(孝寧大君) 이보(李礻+甫)의 14대손으로, 대사헌 이목(李楘)의 7대손이며, 아버지는 이득영(李得英)이다.
정조 때 전강(殿講)에서 『상서(尙書)』를 강독하는데 흐르는 물과 같았다고 한다. 정조는 책상을 두드리며 칭찬하고 음식과 부채를 하사하였다. 문음(門蔭)으로 출사하여 영유현감(永柔縣監)에 제수되었고, 관직이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만년에 예학(禮學)에 관심이 있어 『사례계의(四禮稽疑)』를 저술하였고, 『거가십요(居家十要)』·『교아십요(敎兒十要)』·『회백당집』 등을 지었다. 아들 이돈우(李敦宇)의 추은으로 영의정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