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초명은 이운룡(李雲龍). 자는 자우(子雨), 호는 기헌(杞軒). 이경성(李慶成)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저(李竚)이다. 아버지는 군수 이여주(李汝柱)이며, 어머니는 장선함(張善涵)의 딸이다.
1714년(숙종 40)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갔다. 경종 때에 사간원정언·사헌부지평으로 있으면서 몇 차례 군덕(君德)에 관한 소를 올렸다. 1725년(영조 1) 삼사(三司)에서 복합(伏閤)하여 유봉휘(柳鳳輝)를 문초하자고 주장할 때, 사헌부집의로 있으면서 불참한 것 때문에 한때 파직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곧 복관되었고 여러차례 승지로 발탁되었으며, 동지사(冬至使)의 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전라도관찰사·도승지 등을 거쳐, 1740년 대사간으로 있으면서 이미 죽은 유봉휘와 조태구(趙泰耉)의 삭탈관작과 영의정 이광좌(李光佐)의 파직을 주장하다가 도리어 삭직당하기도 하였다. 이듬해 특별히 가자되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으며 관직은 공조판서에 이르렀다. 시호는 혜정(惠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