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성 ()

유교
인물
조선후기 감찰, 지평, 태천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이칭
맹희(孟希)
칠우(七迂)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65년(영조 41)
사망 연도
1831년(순조 31)
본관
전주(全州)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태천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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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감찰, 지평, 태천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맹희(孟希). 호는 칠우(七迂). 아버지는 진사 이이집(李以鏶)이며, 어머니는 울산김씨(蔚山金氏)로 김이현(金履賢)의 딸이다. 아버지에게 학문을 전수받았다.

생애 및 활동사항

일찍이, 여러 차례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중년에 장성 동쪽에 정사(精舍)를 짓고 강학에 전념하였다. 이 때, 이윤성의 학행이 인정되어 관찰사 이서구(李書九)에 의하여 조정에 천거되기도 하였다.

1827년(순조 27) 대책(對策)으로 증광문과에 급제, 다음 해 주부로 임명된 뒤 감찰·지평을 역임하였다. 1829년 태천현감으로 부임하여 오교(五敎)를 선양하고 흥학(興學)한 공적이 뛰어나 관찰사 김학순(金學淳)에 의하여 조정에 포계(褒啓)되었다.

1831년 현아(縣衙)에서 세상을 뜨자 이민(吏民)이 그를 애모하여 송덕비를 세웠다. 평소 이기설 및 『주역』, 율려(律呂)를 깊이 연구하였다. 저서로 『칠우집(七迂集)』이 있다.

참고문헌

『국조방목(國朝榜目)』
『순조실록(純祖實錄)』
『장성지(長城誌)』
『칠우집(七迂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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