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순경(順卿). 호는 석탄(石灘)·고산(孤山).
1360년(공민왕 9) 문과에 급제, 수원서기(水原書記)를 거쳐 사관(史官)에 발탁되었다.
1366년 우정언이 되어 신돈(辛旽)의 횡포를 탄핵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샀으나, 이색(李穡) 등의 옹호로 극형을 면하고 장사감무(長沙監務)로 좌천되었다. 그 뒤 공주 석탄(石灘)에서 은둔생활을 하며 울분 속에 지내다가 죽었다. 정몽주(鄭夢周)·박상충(朴尙衷) 등과 교분이 두터웠다.
신돈의 전횡을 풍자한 시조 1수를 비롯, 3수의 시조가 『청구영언』에 전한다. 성균관대사성에 추증되었으며, 여주 고산서원(孤山書院), 부여 의열사(義烈祠), 무장 충현사(忠賢祠)에 봉향되었다. 저서로는 『석탄집(石灘集)』 2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