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집중(集中) · 인홍(仁洪).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김제 출신. 1919년 만주 길림성(吉林省)에서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여 활약하였으며, 1922년 3월 28일 상해에서 일본육군대장 다나카[田中義一]암살미수사건에 오성륜(吳成崙) · 김익상(金益相) 등과 함께 가담하였다.
1925년 중국 황푸군관학교[黃浦軍官學校]에 김원봉(金元鳳) · 김용재(金容宰) 등과 함께 입학하여 제4기생으로 졸업하였다. 졸업 후 난징[南京] 등지에서 혁명활동을 계속하던 중 조선민족혁명당 중앙집행위원을 역임하고 자체의 군사조직인 조선의용대의 총무조장으로 활약하였다.
그러던 중 1938년 10월 23일 일본군이 우창[武昌]과 한커우[漢口]를 함락하고, 왕지연(王志延) · 최창익(崔昌益) 등이 이끄는 공산주의자들이 조선민족혁명당의 지도력에 반대하여 많은 의용대원을 이끌고 옌안[延安]으로 감으로써 민족주의진영의 투쟁역량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되었다. 조선의용대는 충칭[重慶]으로 퇴각하고, 1942년 광복군 제1지대로 편입되었다.
광복군 제1지대 총무조장 및 제1지대 지대장으로 임명되고, 1943년에는 과거의 동지들과 함께 임시정부의 정원의원으로 피선되었다. 후베이성 노하구[湖北省 老河口] · 장시성 옌산[江西省 鉛山] 등지를 근거지로 활동하다가, 광복을 맞아 귀국도중 사망하였다.
1963·1968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