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연부(鍊夫). 이원보(李元普)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승(李昇)이고, 아버지는 참판 이연손(李延孫)이다. 어머니는 파평윤씨(坡平尹氏)로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윤번(尹璠)의 딸로, 세조비 정희왕후(貞熹王后)의 동생이다.
문음으로 헌릉직(獻陵直)을 거쳐 한성부판관 재임 시인 1460년(세조 6) 무과에 급제하고, 1466년 등준시(登俊試)에 합격하여 이듬해에 훈련원도정이 되었다. 1468년 예종 즉위 후에 평안도절도사가 되고 성종 즉위 후인 1470년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올랐다.
이듬해 좌리공신(佐理功臣) 3등에 책록되고 월성군(月城君)에 봉하여졌다. 이어 경기도관찰사, 형조·호조의 판서를 거쳐 1480년(성종 11)에 평안도관찰사를 역임하고, 이어 좌참찬·경상도관찰사·대사헌을 지냈다.
1484년에 한성부판윤으로 사민안접순찰사(徙民安接巡察使)를 겸하여 사민정책을 주관하였다. 1486년에 좌찬성이 되고, 이어 판의금부사, 평안도·영안도(永安道)의 도체찰사, 도총관 등을 역임하였다.
1493년에 척신으로서 탐학하고 사치를 좋아하며 전횡이 심하다는 대간의 탄핵을 받아 관직에서 물러났다가 연산군 즉위 후인 1495년에 지의금부사에 복직되었다. 시호는 양평(襄平)이다.